푸틴 러시아 대통령 특별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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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러시아는 아태 지역의 경제 발전에 실질적 기여를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국가들과의 교역 증가율은 연 20%를 넘습니다. 중국과의 교역은 매년 20~30% 증가하고 있고, 올해에는 250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교역량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역내 다른 국가와의 교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의 기본 방침은 '러시아는 아태 지역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는 한 부분'이란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이 지역은 급속한 경제성장뿐 아니라 통합의 움직임 또한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문제의 해법을 공동으로 모색하려는 APEC 국가들의 기본 입장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러시아는 이러한 역내 통합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만이 러시아의 발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인식 하에 러시아는 1998년 APEC에 가입했습니다. APEC은 현재 아태 지역의 대표적 협의체이자 역내 및 국제 현안을 논의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APEC 회원국들은 그동안 역내 경제 영역에서 '게임의 룰'을 정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왔습니다. 하지만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APEC 회의의 핵심 의제가 됐습니다. 러시아는 APEC이 전 세계적으로 대테러 전선을 강화하는 데 더없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다른 모든 APEC 회원국 정상들도 이 같은 접근법에 공감하고 있는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합니다.

테러 조직에 대한 자금 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결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APEC이 다루는 분야는 이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APEC 지도자들은 견착식 지대공 미사일의 불법 유통을 막고 역내 비확산 체제를 강화하는 등 테러 조직의 물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데에도 공동으로 대처해야 함을 깨닫게 됐습니다. 경제 격차 해소, 조직범죄 퇴치 및 부패 척결을 위해서도 활발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지진해일 등 역내 일부 국가를 덮친 자연재해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깊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피해 복구를 위한 활발한 공조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효과적인 자연재해 조기경보체제를 구축하는 데 협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러시아도 이 같은 노력에 나름대로 기여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자연재해 예측, 환경 모니터링, 경보 시스템 개선, 인명 대피, 피해 복구 등의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APEC 참가 초기부터 러시아는 유망한 기술 잠재력을 부각시켜 왔습니다. 이는 비단 산업 분야에 그치지 않습니다. 의학 및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APEC은 공동의 노력으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을 퇴치해 자긍심을 높였습니다. 이제 이 경험을 조류 인플루엔자(AI) 퇴치에 활용해야 합니다. AI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전염병이 조류를 뛰어넘어 인간의 것이 되지 않도록 예방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격리 조치에 그치지 않고 백신 개발 프로그램을 적극 가동해야 합니다.

러시아는 에너지와 교통 분야에서도 매우 진지하게 대화에 임하고 있습니다. 천연자원과 기술.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아태 지역의 새로운 물류 및 에너지 구조 건설에 핵심 역할을 할 용의가 있습니다.

7년 전 APEC에 가입할 당시 우리는 물류 경유지로서 러시아의 독특한 잠재력을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를 통한 물류비는 다른 교역로보다 현저히 저렴합니다. 세계 경제의 강력한 양대 축인 아태 지역과 유럽을 오가는 물동량 처리에도 많은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 종단철도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북한 핵문제로 인해 추진 속도가 빠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남북한 물류를 담당할 프로젝트가 추진 중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러시아가 6자회담의 다른 참가국들과 함께 한반도를 화합 및 발전의 공간으로 변화시키고자 기울이는 끈기있는 노력 중 하나입니다. 늦든 이르든 한반도가 그런 지역으로 거듭날 것으로 확신합니다.

시간은 참 빠릅니다. 지난해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18일 부산에서 APEC 정상회의가 열립니다. '하나의 공동체를 위한 도전과 변화'라는 이번 APEC 회의 주제에 맞춰 APEC 가족의 결속 및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증진 방안이 심도있게 논의될 것입니다. 부산 APEC 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대한민국 정부와 관계자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푸틴이 한국 국민에 보내는 메시지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메시지를 16일 중앙일보에 전해 왔다.

존경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발전과 창조의 길을 따라 당당히 나가고 있는 아름다운 나라를 다시 찾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번 방문이 양국 수교 15주년에 이뤄지는 것이라 뜻이 깊습니다. 짧은 기간에 러시아와 대한민국은 건설적 대화를 했고, 정치.통상 및 인문 분야의 협력 지평을 확대했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굳건히 하고 동북아와 아태 지역 전체에서 다자 협력의 발전을 위한 양국의 내실있는 공조를 특별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러시아는 남북대화를 지지하고 양측의 대화 활성화가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표합니다.

양국 간 격상된 동반자 관계를 높이 평가하고 앞으로도 대한민국과 적극 협력할 방침입니다. 나의 방한이 양국 국민의 우의와 신뢰를 돈독히 하고 서로를 잘 이해하게 하는 귀한 일에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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