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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공간을 더 넓게 책 위한 자리도 더 넓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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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호 22면

주변의 어떤 건물과도 차이가 나는 이 외관은 도서관 내부에 배치된 프로그램을 감싸는 외피로부터 만들어졌다. 마치 스타킹 안에 울퉁불퉁한 상자를 넣고 묶어버린 것처럼 내부 공간의 질서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른 아침 도서관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건물 입구에 모여있다. 바로 그 입구 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임산부의 배처럼 불룩하게 부풀어 있는 모양-. 처마도 아니고 필로티도 아닌 건물의 몸통이 비틀어져 돌출되어 있다. 튀어나온 정도가 심해서 그 아래 일정면적에 비나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그래서 도심의 대로에 면해 있음에도 사람들이 기다리는 장소가 된다.

강예린·이치훈의 세상의 멋진 도서관 <6·끝> 미국 시애틀 중앙 도서관

건물 다른 쪽은 또 어떠한가. 잘록한 허리마냥 쏙 들어가 있는가 하면, 어느 쪽은 처마로 도로를 덮어놓은 것처럼 건물의 입면이 쭉 연장되어 있다. 어느 방향에서 봐도 같은 모양이 아니다. 게다가 ‘풀 메탈 재킷’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한, 철갑을 두른 총알처럼 건물 전체가 철골 래티스로 덮여 있는 것이다. 밤에 멀리서보면 마치 검은색 스타킹에 투명한 육면체의 상자를 넣어놓은 것 같은 형상이다. 기괴하게 생긴 이 도서관은 대체 왜 저렇게 설계된 것일까.

여기 시애틀 중앙 도서관(Seattle Central Library·SCL)을 디자인한 건축가는 렘 쿨하스(Rem Koolhaas)다. 그는 1975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라는 설계사무소를 설립한 이래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한국에도 삼성 리움 미술관, 서울대학교 미술관 등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일층 입구 홀의 전경. 철골 외피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내부에 현란한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도서관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강철 외피와, 인쇄된 자연 패턴은 1층 라운지의 조화로운 경관을 이룬다. 계획없이 배치된 듯한 낮은 서가와 무심한 듯 단순한 가구의 형태는 무엇을 하든 개의치 않겠다는 공간의 인상을 만들어낸다.

4개 콘크리트 박스와 그 사이사이를 공간으로 조성
세계 건축계는 물론 대중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그의 설계 방식은 독특하다. 소위 ‘프로그램에 기초한 건축 설계’라 말할 수 있다. ‘프로그램’이란 건축물에 담아야할 활동·기능·공간 등을 가리킨다. 한 단어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건축물이 요구하는 추상적인 개념들을 통칭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도서관의 건축적 프로그램으로는 열람실, 독서활동, 모임공간, 서고 및 사무실 등이 있다.

‘프로그램’은 눈에 보이는 형태나 재료, 특정한 양식의 언어와 같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건물에서 일어날 활동들이 무엇인가에 관한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도서관의 열람실이 닫힌 방이어야 하는지, 오픈된 라운지가 되어야 하는지, 해석에 따라서 디자인의 결과는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렘 쿨하스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해석을 건축 디자인의 중심 개념으로 삼고 형태나 재료 등이 이를 따르도록 디자인 한다. 마치 현대 미술이 매체를 막론하고 개념미술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처럼, 건축은 프로그램이 조직된 하나의 전체로서 그 구성에서 혁신을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도서관의 설계를 진행하면서 쿨하스는 미국의 도서관에 대한 사회문화적 조사를 통해 두 가지 결론을 도출한다. 한가지는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활자화된 책을 찾기 때문에 이를 저장하기 위한 서고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시민들은 책이 가득찬 서고보다는 넓은 공공 공간을 원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책도 필요하고 더 넓은 공간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프로그램의 상반된 요구조건으로부터 단면 설계를 우선 진행한다. 소음과 공간의 안정성 여부에 따라 10여개의 용도로 프로그램을 세분화하고 5개 군으로 압축했다. 그 다음 ‘플랫폼’으로 이름을 붙인 11개의 바닥판을 만들고 지하부터 주차장·정보·회의·서고·행정 순으로 군집을 나누었다. 그리고 나면 주차장을 제외한 지상의 4개 플랫폼을 콘크리트 박스로 만들고, 이 덩어리를 좌우로 이동시켜 공공 공간과 서고를 분리한다. 그후 4개의 박스를 수직적으로 간격을 벌려 사이사이에 활동적인 프로그램을 배치하였다. 그 결과로 인해서 네개의 부유하는 콘크리트 박스가 하나의 외피로 들쭉날쭉 감싸여 있고 외피와 박스 사이사이에 비워진 공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계획 당시 건축가가 믹싱챔버(Mixing Cahmber)라고 이름붙인 넓고 활동적인 회합의 공간. 중앙 서고 바로 아래층에 높고 넓은 열린 공간은 에스컬레이터가 뚫고 올라가듯 서고와 연결되면서 다소 소란스러운 활동이 서고 바로 아래에서도 일어날 수 있게 디자인 되었다.

‘모두를 위한 도서관’ 모토 … 빌 게이츠가 200억원 기부
한참을 기다려 도서관 로비로 들어서면 밖에서 보던 철골 외피를 통해 밝은 빛이 산란되어 들어온다. 밖에서 본 유별난 형태가 내부에서 공간질서를 만들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외피는 공중에 떠있는 플랫폼, 즉 콘크리트 박스를 받치기 위한 구조의 역할도 함께 한다. 그래서 넓은 플랫폼 하부 공간이 기둥하나 없이 비워져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지하공간으로 파고 들어가 있는 오디토리움을 만나게 되고 그 옆과 위로 넓은 라운지가 위치한다. 마름모꼴의 철골 외피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바닥에 현란한 그림자를 만들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놓인 가구 사이사이를 분주하게 오간다. 강철 외피와 바닥에 인쇄된 자연 패턴은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1층 라운지의 경관을 이룬다. 계획없이 배치된 듯한 낮은 서가와 무심한 듯 단순한 가구의 형태는 무엇을 하든 개의치 않겠다는 공간의 인상을 만들어낸다. 정숙해야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건축 역시 당신이 누구든 이 공간에서 자유롭게 이야기 하면서 책을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커다란 로비를 지나 2층 리빙룸을 거쳐 미팅공간으로 쓰이는 콘크리트 박스를 관통해 다시 믹싱체임버라는 오픈된 공간에 도달하면 이제서야 이 건물이 어떤 의도로 만들어져 있는지 감각적으로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네 개의 콘크리트 박스는 다소 정적인 프로그램이 그 안에 들어가 있고 사이사이 비워진 공간은 비교적 소란스러워도 괜찮은 거실이나 검색대, 열람실 등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공간은 형광색 에스컬레이터가 콘크리트 박스를 관통하며 연결되어있다. 이런 방식으로 믹싱체임버 위로는 또 메인 서고 덩어리가 떠있고 그 덩어리 위로는 라운지에서 독서할 수 있는 열람공간이 위치하게 된다. 조금 단순화 시켜보면, 네개의 콘크리트 박스와 이를 감싸는 철골 외피, 그리고 박스와 외피사이의 비워진 공간이 각각 공간 성격에 맞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외관이나 형태는 강한 의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형태 자체의 특이함을 추구한 결과는 아니다. 현대 건축의 프로그램이 가진 복합성과 불확정성을 해석하고 풀어내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결론인 것이다. 이처럼 프로그램이라는 추상적인 요구사항을 재료삼아 쿨하스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새로운 건축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이한 형태 때문에 개관 당시 찬사와 혹평을 함께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이 도서관은 그 이색적인 형태만큼이나 건립의 과정역시 특별했다.

시애틀은 1890년에 ‘시애틀 공공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도시 전체를 지원하는 공공 도서관의 시스템을 수립했다. 이 시스템을 100년 넘게 활용해오던 와중에 1998년 워싱턴 주의 낡은 공립 도서관을 개선하는데 시민의 세금을 투자할 것인가에 관한 주민 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찬성으로 결정되었고 지방정부가 채권을 발행했는데, 그 이름은 “모든 이를 위한 도서관(Library for all)” 이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애틀 중심부에 SCL이 신축되었는데, 전체 프로젝트 비용의 가장 많은 돈을 썼다고 한다. 당시 시애틀에 본사를 두고 있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게이츠가 약 200억 원을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쿨하스가 “이처럼 긍정적인 상황에서 설계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SCL은 시민사회와 지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설계가 진행되었다. 까다로운 건축 도시법, 지방정치를 잘 파악하고 있는 시애틀 출신의 젊은 건축가가 실질적 책임을 맡고, 현지 사무소인 LMN이 밀착되어 협업했다.

무엇보다 도서관 관장의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가 있었는데, 이런 공공의 사업에서 늘 있게 마련인 잡음들을 조율하고 돌파하면서 건립의 과정을 지원했던 것이다. 그렇게 SCL은 건축가가 현대 도서관 공간에 대한 혁신적인 해석을 내놓음과 동시에 “모두를 위한 도서관”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도서관계의 기획력이 합쳐져 공공 건축 프로세스의 이상적인 모델을 달성하게 되었다.

강예린·이치훈 건축가 부부.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SOA)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도서관 산책자』『세도시 이야기(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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