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국 유학 아들 연 4800만원 … 퇴직금 까먹는 서울 47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조기 퇴직한 김모씨(왼쪽)가 16일 서울 여의도의 전경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서 김동준 센터장으로부터 상담을 받고 있다. [신인섭 기자]

지난 4일 오후 서울 동국대 중앙도서관에 학생 6명이 ‘면접 스터디’를 위해 모였다. 모두 지난해 취업을 못해 졸업을 미룬 졸업 유예생이다. 이들에게 대학생활 동안 부모에게 지원받은 금액을 조사했다.

등록금·학원비·해외연수비 등으로 최소 5000만원에서 최대 1억1000만원이 나왔다. 김모(26·여·서울 서초구)씨는 2년 동안 어학연수·교환학생을 갔다 오느라 6000만원을 부모에게 지원받았다. 김씨는 “어머니가 초·중·고교 때 학원비보다 대학에서 돈이 더 든다고 했다. 죄송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녀가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부모의 지원은 그칠 줄 모른다. 1차적 원인은 취업난이다. 2013년 8월과 지난해 2월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의 인문·사회계열(상경계열 제외) 졸업생의 취업률이 45.4%로 조사됐다. 소위 명문대도 취업난의 칼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통계청 조사 결과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 입사하기까지 2005년엔 10개월이 걸렸지만 지난해엔 12개월로 늘었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취업 연령이지만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지 않고 취업도 안 한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 163만 명에 이른다.

 이들의 뒷바라지는 대부분 ‘반퇴(半退) 세대’인 부모의 몫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할 때까지 15년 넘게 자녀를 사교육 시키는 시대가 됐다. 김모(47·서울 마포구)씨는 지난해 7월 보험사에서 조기 퇴직한 후 구직 중이다. 아파트와 주식이 있지만 한 학기 600만원인 대학교 3학년 아들의 등록금과 월 90만원씩 들어가는 중3 딸의 학원비를 생각하면 넉넉하지만은 않다. 당장 소득이 전혀 없어 불안감이 크다. 김씨는 연 4800만원쯤 드는 유학비용을 무릅쓰고 지난해 12월 미국 대학으로 아들을 보냈다. ‘해외 복수학위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싶다’는 아들의 희망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 노후 때문에 아이의 꿈을 희생시킬 순 없다”는 게 그의 얘기다.

 대학생들은 취업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취업 스펙을 쌓으려 부모에게 손을 벌린다. 한모(55·경기도 고양시)씨는 “딸아이 토익 점수 때문에 영어학원비로 240만원이 들었고 항공기 승무원 학원비로 130만원을 썼다. 고등학교 때 학원비는 차라리 싼 편”이라고 말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취업이 안 되니 결혼도 늦게 한다. 자녀의 독립시기인 초혼(初婚) 연령은 1990년 남성 27.8세, 여성 24.8세에서 2013년 각각 32.2세, 29.6세로 늦춰졌다. 김정현(52·서울 서초구)씨는 “요즘은 취직도 안 되고 결혼도 늦게 하니 뒷바라지 비용이 더 많이 드는데 자녀가 2명만 돼도 부담이 너무 크다”고 토로했다. 그는 “은퇴를 코앞에 두고도 대비할 수 없으니 이대로면 어떤 복지 혜택을 줘도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성인 자녀 한 명과 동거하면 은퇴 생활비가 매달 98만원 더 필요하다.

 부산에 사는 정모(50·여)씨는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보내면 ‘반퇴 푸어’가 아니라 ‘당장 푸어’가 된다. 원룸은 월세 50만원이 기본이라 학비 빼고도 매달 130만원을 지원해 줘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더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 유학 간 자녀의 월세는 부모가 집이 있으면 연말정산에도 포함되지 않아 이중고를 겪는다”며 “모든 돈이 서울로 몰리고 지방엔 빚만 남고 있다”고 덧붙였다.

글=김기환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