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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그 김대중 말고 동교동 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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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대중(DJ.얼굴(右))-김영삼(YS.(左)) 두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정치사의 양대 산맥이다.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투쟁의 동지였지만 권력을 놓고는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의 6일 전화통화는 극적이다. 뒷얘기도 무성하다. 동교동과 상도동 비서들의 말을 토대로 재구성해 본다.

◆ 12년 만의 전화통화=일요일인 6일 오후 2시. YS의 상도동 자택을 지키던 비서는 갑자기 바빠졌다. 뭔가에 골몰하던 YS가 느닷없이 "김대중을 (전화로)연결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당직비서는 즉각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그럴 만도 했다. YS와 DJ 간 전화 통화는 12년 전인 1993년1월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14대 대선에서 패배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DJ는 YS에게 전화를 걸어 "영국으로 떠난다. 앞길에 영광이 있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대중"을 언론인으로 비서가 오해한 이유다. 하지만 휴일이어서 김 고문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비서는 YS에게 "조선일보 김 주필과 전화가 닿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YS의 한마디. "거기 말고 동교동을 대라".

우여곡절 끝에 상도동 당직 비서가 동교동에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DJ의 비서가 당황했다. 처음엔 장난전화인 줄 알았다고 한다. 두 전직 대통령 간의 통화 직전 양측 비서는 의전 문제를 협의했다. 전화기를 일단 대기 상태에 놓고 YS와 DJ가 동시에 수화기를 들었다고 한다. 둘은 서로를 "김 대통령"이라고 부르며 안부를 물었다. 대화는 채 5분을 넘지 못했다.

◆ 만남으로도 이어질까=YS는 퇴임 후 DJ를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YS 자신과 주변을 상대로 정치보복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좀 달라졌다고 한다. 한 측근은 "호감을 보이진 않지만 비난하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이번 전화통화 사실이 알려진 후 정치권의 관심은 회동의 성사 여부에 쏠렸다. 형식은 YS가 동교동으로 문병을 가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잠시 고민하던 YS는 "당분간 두고 보자"며 만나지는 않겠다는 뜻을 주변에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가능성은 조금씩 커지고 있다. 그 후 YS를 만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화에 "잘하셨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 사정을 잘 아는 한 소식통은 "YS와 DJ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말이 '국민들이 좋아한다'는 것이다"라며 "황혼기를 맞은 양김의 진정한 화해는 지역통합의 정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표-DJ 오늘 회동

양김의 전화통화에 이어 14일에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김대중 도서관으로 찾아가 DJ를 만난다. 양김씨가 애증이 엉킨 라이벌 관계라면 김대중과 박정희는 정적(政敵) 관계였다. 그 때문에 박 대표와 DJ의 관계 개선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라는 의미를 지닌다.

DJ와 YS의 전화통화를 계기로 정치권에선 "3김 정치의 청산은 단순한 '배제'가 아니라 '극복'에서 이뤄진다"는 말이 나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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