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벗 되기, 해충 박멸 … 대구에 '어사또' 출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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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667-3119.’ 이 번호로 “도와 달라”고 전화하면 집안의 바퀴벌레까지 잡아주는 구청이 있다. 물론 대구 달서구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복지 대상자가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출동하면 쓰레기를 버려 달라거나 화장실과 집 청소를 요청해도 된다. 수도꼭지나 형광등 교체, 깨진 유리창이나 찢어진 방충망도 새로 달아준다. 병원에 데려다 주기도 하고 녹슨 대문도 새로 칠해준다.

 이웃의 ‘출장 도우미’를 자처하는 이들은 대구 달서구청의 ‘어사또’ 팀이다. 지난해 4월 ‘어’려운 ‘사’람을 달서구가 ‘도(또)’와 드립니다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새로운 복지 부서다.

 출동을 주업무로 하는 어사또 팀원은 장비부터 남다르다. 볼펜과 수첩 대신 장갑·망치·드라이버 등이 제1 도구다. 어사또라는 스티커가 부착된 출동차량(모닝)에는 전구와 샤워호스·방충망·살충제 등이 실려 있다. 철물점 차량이 따로 없다. 권정미(49·여) 어사또 팀장은 “팀원은 3명이지만 복지 대상자가 도움을 요청하면 해충 박멸까지 해준다. 범죄 해결을 빼고는 몽땅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모(78·달서구 송현동)씨는 지난달 말 어사또를 만났다. 집 대문에 붙은 ‘복지도우미 어사또’라고 쓰인 스티커를 보고 전화한 것이다. 몸이 불편한 그는 10㎡ 남짓한 단칸방에 혼자 산다. 집을 제대로 치우지 못해 언제부턴가 바퀴벌레와 개미가 집안 곳곳에 우글거렸다. 어사또의 도움이 필요했다. 어사또 팀원은 김씨의 집 곳곳을 다니며 살충제로 바퀴벌레와 개미를 잡았다. 방치된 음식물 쓰레기도 모두 치웠다.

 어사또 팀원은 1주일에 한 번 전기나 도배 기술자를 따로 만나기도 한다. 전구나 콘센트 교체, 간단한 도배 방법 등을 배우기 위해서다. 하지만 보일러나 전기장치 고장 수리 등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할 땐 ‘어사또 지원팀’의 도움을 받는다. 전기나 도배, 토목 기술 등을 가진 10명의 자원봉사자가 어사또의 뒤에 있다.

 지난해 4월부터 10개월 간 어사또가 이웃을 도운 건수는 총 381건. 외로움을 호소하는 이웃의 말벗 서비스를 해준 현장 고충 상담이 151건으로 가장 많았고 병원 이동(44건), 콘센트·수도꼭지 교체(7건) 등 생활 불편 도움이 68건으로 뒤를 이었다. 단열 에어캡 설치(33건)나 해충 방역(4건) 등 환경 개선 도움도 60건이나 된다.

 어사또가 꾸려진 배경은 달서구 거주 인구가 61만5000여 명으로 국내 기초단체 중 서울 송파구(66만4000여 명) 다음으로 많아서다. 거주 인구가 많은 만큼 복지 대상자가 많고, 그만큼 특별한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달서구 내 복지 대상자는 3만3000여 명이다. 송파구(1만4500여 명)보다 어려운 이웃이 두 배 이상 많다.

 어사또 서비스가 자리를 잡아가자 따라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대구 수성구와 동구는 상반기 중 어사또를 벤치마킹한 복지 서비스를 시행할 예정이다. 곽대훈 달서구청장은 “앞으로 어사또팀을 더욱 확대해 어사또 서비스가 국내를 대표하는 새로운 복지 서비스 모델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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