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의 예산안 예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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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상임위가 4년만에 예산안예비심사를 진행중이다. 지난 3년간 예산심사권부활을 위해 여야가 벌인 논쟁과 협상과정을 생각하면 예산심의에 임하는 국회의원들에겐 실로 정성들여 가꾼 과일을 따는 기분이 있음직하다.
특허 예결위위원 50명만 다루던 예산·결산안을 국회의원 전원이 달라붙어 심의한다니 의원 개개인의 보람도 있으려니와 국민의 입장에서도 기대가 사뭇 크다.
국회의 예산심의란 정부의 정책목표가 예산을 통해 얼마나 현실화 되었는가. 나라살림이 법대로 집행되었는지, 낭비나 불합리한 지출은 없었는지를 챙겨보고 다음해의 살림을 규모있게 통제·조정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금년 정기국회의 예산심의는 이같은 목적에 당장 접근하기 어려운 몇가지 제약요인이 있었던게 사실이다. 우선 법개정이 회기의 중반을 넘어 이루어짐으로써 개정법의 실감이 없었던 탓인지 국회·정부 모두가 충분히 사전준비를 한것 같지도 않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때 이번의 상임위예산심사가 당장 충실하리라 믿는것은 지나친 기대일지 모른다. 게다가 의원의 80%가 초선이라는 점에서 이번은 차후를 기대한 일종의 오리엔테이션 기회라고도 봐줄수 있다.
그러나 지난 닷새간의 심의활동을 보노라면 의정과 정부측의 자세에 예산심의의 개념에대한 뭔가 오해가 있지않나하는 걱정이 드는때가 적지 않았다.
예산안이 국회에 넘어오면 수정하는것은 국회의 고유권한이다. 그런데도 많은 의원들이 『정부는 깎을 용의가 없느냐』는 질문을 한다.『이렇게 깎거나 조정하면 정부의 사업집행에 어떤 지장이 있느냐』고 묻는것이「권인」을 행사하는쪽의 합당한 표현이 아닐까.
또 예산심의와 일반 정책질의와의 차이를 별로 고려하지않은 발언이 많다.
예산심의를 하면서 농민들의 한숨소리만 전하면 무엇하는가. 농민의 한숨이 있다면 계수에 반영시켜야한다. 심지어 아까운 심의시간을 생김새가 어떠니 TV에 나오지 말라는등 인신공격을 하거나 천하대세(?)를 논하는 정견발표로 허비하고마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계수를 물으면 사사건건 실무자들에게 물어야 답을 할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부처에 그런 예산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장·차관들을「호통」보다는「이론」으로 편달할수는 없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국회가 어렵게 돌려받은 예산심사권을 진정한 권한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한때나마 왜 위상예산심사권을 없앴던가를 깊이 유념해야할 것이다. <전 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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