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은밀하고 위대한타이밍의 예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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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호 29면

감정은 즉각적이고 현재를 지향한다. 우리 뇌는 현재의 감정이나 신체적 상태를 토대로 미래에 영향을 미칠 의사결정을 내리곤 한다. 예를 들어 기분이 매우 좋아 들뜬 상태에서 쇼핑을 할 경우에는 제품 가격에 대해 평소보다 관대해지기 쉽다. 지금 내 기분이 어떻든 제품 가격 자체는 변동이 없지만 이를 선택하는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배가 몹시 고픈 상태에서 일주일 분량의 장을 볼 경우에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식료품을 구매할 확률이 높다. 현재 배고프다고 해서 미래의 내가 평소보다 많이 먹는 것도 아닌데 현재 상태를 기준으로 미래 시점에 영향을 주는 선택 행위를 하는 것이다.
우리 뇌는 먹고, 자고, 배설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생존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이러한 본능적 욕구들은 충족 즉시 재빠르게 사라진다. 또 기쁨·슬픔·즐거움·불쾌함 등의 감정 역시 본능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뭔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거의 즉흥적으로 발생하고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감정적으로 흥분한 상태에서 헤어진 연인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후회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감정적으로 흥분한 상태에서 우리 뇌는 이 감정이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라 과대평가하고 의사결정을 한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흥분한 상태에서 내린 결정은 흥분이 가시고 난 후 곧바로 후회하기 쉬운 것이다. 또 우리 뇌는 미래가 주는 불확실성보다 현재의 확실성을 선호하기 때문에 미래의 큰 이익보다 현재의 작은 이익을 더욱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다음을 보자.
A. 내일 10만원 수령
B. 365일 뒤 20만원 수령

A보다 B의 이익이 두 배 높지만 사람들은 미래가 주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A를 선택한다. 즉 우리 뇌는 미래가 주는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에 금전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다음을 보자.

C. 365일 뒤 10만원 수령
D. 366일 뒤 20만원 수령

C와 D 모두 미래 시점이다. 이런 경우 두 개 옵션 모두 미래가 주는 불확실성에 노출됨에 따라 오직 기대이익의 크기만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익이 두 배나 큰 D를 선택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선택 행위의 시점이 가까운 미래인지, 먼 미래인지에 따라 사람들의 행위가 어떻게 달라질까.

다음을 보자.

E. 확률은 높지만 당첨금이 적은 게임
F. 확률은 낮지만 당첨금이 많은 게임

한 실험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A와 B 중에서 당장 내일(가까운 미래) 할 게임을 선택하도록 했을 땐 당첨 확률이 높은 A(실제 발생 가능성)를 선호하는 비율이 높았다. 그러나 1년 뒤(먼 미래)에나 할 게임을 선택하도록 했을 땐 당첨금이 많은 B(결과가 바람직한 대안)를 선호하는 비율이 높아짐으로써 시점에 따라 선호가 역전됐다.

종합하면 동일한 대안이라도 (1)현재 감정 상태는 어떠한가 (2)기대이익을 언제 획득하는가 (3)어느 시점에 선택하는가에 따라 대안들에 대한 선호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선택이란 수많은 대안 중에서 단순히 객관적으로 좋은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선택 과정에서 주관적 만족감을 최대화하는 행위다. 그리고 원하건, 원치 않건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우리에게 타이밍은 ‘은밀하지만 위대하게’ 영향을 미친다. 어떤 치약을 고를지부터 어떤 국가 정책을 추진할지까지 모든 것에는 타이밍이 있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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