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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의 후예 291만명 … 중국 '촹커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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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국의 수도 베이징 중관춘에서 불기 시작한 ‘촹커(創客) 열풍’이 선전(深 土+川)과 상하이(上海)·구이저우(貴州), 서부 우루무치 등 중국 전역으로 번져가고 있다. ‘촹커’는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혁신 창업자를 뜻한다. 이제 촹커는 중국 큰손 관광객 ‘요우커(遊客)’처럼 중국을 뛰어넘어 세계 경제 지형도를 바꿔버릴 태세다.

 지난달 4일 리커창 중국 총리는 새해 첫 방문지로 중국의 새로운 IT산업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선전의 창업 인큐베이터 ‘차이훠촹커쿵젠(柴火創客空間)’을 택했다. 차이훠(땔감)란 표현은 ‘여럿이 힘을 합쳐 땔감을 태우면 불꽃이 높이 인다(衆人拾柴火焰高)’는 속담에서 유래했다. 올해 4년째가 된 차이훠촹커쿵젠 한 곳에만 1만여 명이 넘는 예비창업자가 몰려 있다. 리 총리는 이곳에서 젊은 촹커들이 만든 혁신 제품들을 살펴본 뒤 직접 차이훠촹커쿵젠의 명예회원으로 등록해 촹커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리 총리는 이어 26일 베이징 국무원 좌담회에서 “중국에서 1억 명이 창업하고 혁신을 일궈낼 수 있다면 이것(촹커)이 중국 경제의 새로운 엔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총리는 대중창업·만민혁신이란 단어를 써가며 ‘촹커 시대’를 역설했다.

 촹커들이 이끄는 중국 창업 성장세는 실제 통계로 확인된다. 지난해 중국의 신규 벤처창업자는 291만 명에 달했다. 한국(2만9910건)의 100배 수준이다. 또 지난해 중국에서 유치한 벤처투자금액은 155억3000만 달러(약 16조9000억원)를 기록해 전년 대비 세 배 이상 급증했다. 지난해 한국의 벤처투자(1조6393억원)와 비교하면 15배 이상이다.

 중국에서 촹커 열풍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일단 규제가 덜한 데다 지원을 아낌없이 퍼붓는다. 실제로 촹커 육성을 위해 중국 정부는 지난달 14일 400억 위안(약 7조원)에 달하는 창업 기금을 조성했다. 둘째, 중국 경제 동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인프라·부동산 위주의 과거 성장 모델이 힘을 잃은 대신 스마트폰·O2O(Online to Offline) 기업 등 스타트업이 경제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경제를 떠받치기 위해서라도 3월 열리는 양회(兩會)에서 창업은 핵심 의제로 부각될 전망이다.

 셋째,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와 레이쥔 샤오미 회장 등 중국 토종 촹커의 성공 스토리도 촹커 현상에 불을 지폈다. ‘하니까 되더라’는 자신감도 충만하다. 중국 촹커 세대에 창업은 ‘밥벌이’이면서도 즐거운 ‘창조 놀이’다. 한국에서 창업하면 ‘카페·치킨집’을 떠올리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이다.

 풍부한 인적 자본, 14억 내수시장, 여전히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제조업 능력, 외국 기업에 대한 확실한 진입장벽, 실패도 용인하는 창업 문화까지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뭉쳐 창업국가 중국을 가능케 한다.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혁신과 내수를 앞세운 한국에 중국의 촹커 열풍은 위협”이라며 “국내라는 틀에서 벗어나 판을 바꿔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촹커(創客)=기술을 기반으로 한 혁신 제조업자를 의미하는 신조어. 영어 ‘메이커(Maker)’의 중국식 번역이다. 롱테일 이론을 창안한 크리스 앤더슨의 저서 『메이커스』(2012)에서 유래했다.

특별취재팀 베이징=최형규·예영준 특파원, 서울=신경진·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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