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좌파에 사살된 그레나다 좌파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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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그레나다에서 발생한 지난 20일의 정변은 수상대 부수상의 배후조종을 받은 군부와의 싸움에서 군사령관인 「허드슨·오스틴」부수상이 「1주일간의 권력쟁탈전」 에서 극적으로 승리한 한판의 승부였다.
수상과 각료3명, 노동지도자등 모두 6명의 피살로 끝난 이번 정변은 지난 13일 부수상 「버나드·코드」가 군부와 손을 잡고 수상 「모리스·비숍」 을 가택연금시킨 군부쿠데타로 시작됐다.
부수상겸 재무상인 「코드」 는 노동상겸 군사령관인 「허드슨·오스틴」 과 합세, 「비숍」 수상을 가택연금 시키고 『「비숍」 수상이 독재를 한다』 는 이유로 일단 권력의 중심에서 밀어냈다.
「비숍」 과 「코드」 는 같은 39세의 동갑나기 정치인이자 마르크시스트로서 집권당 「뉴주얼운동당」 (NJM)을 창설, 79년 쿠데타로 집권한 뒤 함께 통치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1년전 부터 권력투쟁으로 사이가 벌어져 「비숍」 은 국민의 인기와 각료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정권을 유지해왔으나 「코드」는 군부의 힘을 업고 대항, 끝내 무력으로 권력을 탈취한 것이다.
「비숍」 이 가택연금되자 각료 9명중 6명이 「비숍」의 복권을 위해 내각에서 사임하고 이어. 그레나다 노조지도자 2명의 협력을 얻어 반쿠데타 시위를 위한 전국총파업을 유도해내는데 성공, 권력투쟁은 2차전으로 옮아갔다.
수도 세인트 조지시에서 3천명의 시민이 동원된 이 시위는 20일 상오 「비숍」이 연금된 수상자택으로 몰려가 경비병들을 밀어내고 그를 「구출」 했다.
이 민중시위는 세인트조지시의 전상가가 철시되고, 유일한 국영방송인 「자유 그레나다 라디오」 관계자가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돌연 방송을 중단할 만큼 전국규모였다.
이날 상오 10시3O분 「비숍」을 구출한 시민들은 『「비숍」없이 고용 없고, 「비숍」없이 교육 없다』 는 친수상구호를 외치며 「코드」와「오스틴」 이 있는 군사령부 루퍼트요새로 몰려갔다.
이 요새에는 90여명의 친「비숍」 인사들을 구금하고 있어 수상을 구출한 민중들이 내친김에 나머지 인사들도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비숍」 수상과 다른 각료 4명이 가세한 이 군중이 요새로 접근하자 갑자기 군차량들이 병사들을 싣고와 발포, 군중을 해산시켜 버리고 그 자리에서 「비숍」 과 시위주동자 각료들을 체포해 요새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요새 안에서 잇단 총성이 들리고 불길이 솟았고 이 자리에서 「비숍」 일행은 모두 사살됐다.
피살된 「비숍」 은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아루바섬에서 태어나 영국의 런더시에서 법학을 전공한 인텔리로 마르크스 신봉자였으나 집권 4년 동안 비교적 개방정책을 추구해왔다.
그가 피살된 장소인 루퍼트요새는 「비숍」 의 아버지「루퍼트·비숍」에서 이름을 따온 인연이 깊은 곳이다. 「루퍼트」 는 74년 전우익계 집권자 「에리크·게이리」의 경찰에 의해 피살된 인물로 「게이리」 는 79년 미국방문중 「루퍼트」 의 아들인「모리스·비숍」의 쿠데타로 권좌에서 밀려났었다.
부수상 「버나드·코드」 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랜다이스대와 영국의 서섹스대를 졸업한 「비숍」의 정치동반자였으나 「비숍」 과는 달리 친소련, 친쿠바 마르크시스트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번 정변도 배후에는 쿠바의 입김이 도사린 것으로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
좌파정권이 극좌파에 의해 제거된 셈이다. 이번 정변에서 실권자는 대체로 3명으로 꼽히고 있다. 부수상 「버나드·코드」와 자메이카 출생으로 여성담당성 차관과 전국여성기구 회장을 맡고 있던 그의 아내 「필리스·코드」, 그리고 노동장관인 군부실력자 「허드슨·오스틴」 이 3주역.
이중 최고 실권을 장악한 군사령관 「오스틴」장군을 의장으로 한 군사혁명위가 구성됐지만 이번 정변이 쿠바가 배후세력으로 등장, 외세개입이라는 불리한 요소와 대다수 국민의 반발과도 계속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신정권은 그 출발이 순탄한 항해를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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