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쓰는 해외교육 리포트]<30> 말레이시아 중화초등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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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초 3학년 홍유빈양

江南通新이 ‘엄마(아빠)가 쓰는 해외 교육 리포트’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국 엄마(아빠)들이 직접 그 나라 교육 시스템과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 드립니다.

중화초등학교

●지역: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구분: 중국계 공립 초등학교
●설립연도: 1925년
●학제: 6년제
●학기 구분: 2학기제(1학기 1~6월, 2학기 7~11월)
●규모: 전교생 1200명(한국인 학년별 10명 내외). 학년 당 5개 학급
●학급당 정원: 40명
●학비: 무료. 외국인은 교육청에 연 120링깃(한화 약 3만6000원) 납부
●주소: Jalan Damai Off Jalan Ampang 55000 Kuala Lumpur, Malaysia
●전화번호: +60-3-21486453
●홈페이지: www.chp.edu.my

2007년 남편과 태어난 지 딱 두 돌 된 유빈이를 데리고 말레이시아에 왔다. 남편의 공부와 사업, 아이 교육을 위한 결정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말레이시아 교육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는데, 돌이켜보니 실(失)보다는 득(得)이 많았다. 영어·중국어·말레이어 등의 외국어를 사교육 없이 동시에 배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이게 가능한 건 말레이시아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국가기 때문이다. 단지 언어를 배우는 것뿐 아니라 여러 문화를 가진 인종과 함께 어우러져 생활하면서 시야를 넓히는 기회도 얻었다.

영어는 기본, 중국어·말레이어는 덤

중국계 학교라 중국 스타일의 행사도 많이 열리는데, 설날 때 열린 사자춤 행사도 그중 하나다. 새해를 맞아 악귀를 쫓고 복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달리 초등학교 선택의 폭이 넓다. 어떤 학교를 다니느냐에 따라 아이가 배울 수 있는 언어와 부모의 교육방법이 달라진다. 초등학교는 크게 국제학교와 공립학교로 나뉘는데, 두 학교의 가장 큰 차이는 학비다. 국제학교는 1년에 보통 1000만원 정도 들지만 공립학교는 학비는 물론 교재까지 무료다. 외국인만 연 120링깃(한화 약 3만6000원)의 교육비와 100링깃(한화 약 3만원) 정도의 교재비를 내면 된다.

공립학교는 주로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말레이계·중국계·인도계로 구분한다. 현재 유빈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그중에서도 중국계 공립초등학교다. 중국계는 영어와 말레이어 과목을 제외한 수학·과학 등의 나머지 과목은 중국어로 가르친다. 기본적으로 초등학교에서 중국어·영어·말레이어 등 3개 언어로 수업이 이뤄진다는 얘기다.

처음에는 국제학교에 보냈었는데, 2학년 때 지금의 학교로 옮겼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중국어 교육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서다. 국제학교에서도 중국어 수업이 이뤄지긴 하지만 제2외국어로 배우는 거라 대부분 과목을 중국어로 배우는 공립학교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말레이시아 중화초등학교는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립심을 키우고 성장할 수 있게 돕는다. 체육대회 때 군악대 연주 모습.

중국계 학교를 졸업하면 현지인 수준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고 들었다. 말을 알아듣고 “예” “아니오”로 답하는 걸 뛰어 넘어 “A가 아니라 B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C다”와 같이 상대방의 의견을 반박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는 얘기다. 유빈이가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이라 “완벽하게 익혔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세 개 언어로 된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 걸 보면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4살 때부터 2년 간 중국계 말레이시아 사람이 운영하는 유치원을 다니면서 중국어 기초를 익혔던 것도 도움이 됐다.

국제학교에 굳이 보내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생활 속에서 영어를 익히는 데 크게 무리가 없어서다. 말레이시아에서 생활하다 보면 따로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영어를 하지 않고는 생활하기가 불편해서다. 상점 간판도 영어로 돼 있고, 편의점에 물을 사러 갔을 때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주문할 때도 영어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이는 말레이시아의 사회 문화적 배경과 연관이 있다. 말레이시아는 다(多)인종 국가로 전체 60%가 말레이시아인, 25%가 중국인, 7~8%가 인도인이다. 전체적인 비율은 말레이시아인이 가장 높지만 수도 쿠알라룸푸르는 중국인과 말레이시아인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 서로 다른 인종 간의 소통을 돕는 도구가 영어다. 각자 집에서는 모국어를 사용할지 몰라도 밖에서는 영어로 대화한다. 그렇다 보니 한국처럼 어렸을 때부터 사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영어의 필요성을 알고 스스로 익히게 된다.

과정보다는 결과 중시, 성적 위주의 주입식 교육

스승의 날 행사

말레이시아 공립학교는 대부분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주입식 교육이다. 1980~90년대 한국의 공교육을 떠올리면 이해가 더 쉽다. 국제학교에서 흔히 하는 토론식 수업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교과서에 그림은 거의 없고 글만 빽빽하게 차 있다. 요즘 한국 초등학교 교과서나 교구 등을 구해서 보면 동화책처럼 아기자기한 그림이 그려져 있어 새삼 놀랄 때가 많다.

또 무엇보다 성적이 최우선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으로 학생을 줄 세우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는데 유빈이 학교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전교 등수로 우열반을 나눠 수업을 진행한다. 매일 치르는 단어 시험, 매주 보는 쪽지 시험, 중간·기말고사 성적, 출석률 등을 합쳐 등수를 매긴다. 시험을 치른 후 성적을 교실 벽에 붙여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 오히려 자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기회가 된다. 초등학생들이 학업스트레스 받을 것을 우려해 중간·기말고사를 없애고 단원평가를 치르는 한국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바자회에서 음료수 등을 팔고 있다.

과정보다 결과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는 것도 특징이다. 수학·과학 등 주요 과목은 물론 예체능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때 완성하지 못하면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예컨대 한 학생이 검은색으로 배경을 칠하다 미술시간이 끝나면 “밤을 그렸다”고 칭찬하면서 자신감을 심어줄 수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완성을 못했으니 점수를 받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말레이시아 교육제도를 살펴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중등학교 때부터 시험 성적에 따라 학교에 들어가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는 공부 많이 시키고 중등학교 합격률이 높은 초등학교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거다. 보통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성취평가시험(UPSR)을 치르는데, 유빈이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전국 순위가 높은 편에 속한다. 국제학교에서 자유롭게 공부하던 게 익숙했던 터라 이런 학교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우려했던 게 사실인데, 아직까지 큰 문제 없이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체육대회에서 태권도 격파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 중화초등학교]

교육열이 높은 만큼 사교육도 활발하다. 말레이시아 초등학생의 하루는 오전 7시5분에 시작해 오후 1시15분이면 끝나는데, 하교 후 시간을 이용해 학원에 다니는 사람이 많다. 명문 공립중등학교나 사립학교를 목표로 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다니는 애들도 있고, 4~5학년부터 많이 다닌다. 보통 열 명이 탈 수 있는 크기의 승합차가 학교 앞에서 애들 태워 갖고 각자 학원에 데려간 후 오후 6시까지 수업한다. 초등학교 6학년 정도 되면 오후 11시까지 학원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유빈이는 1학년 때 중국어 과외를 잠깐 시킨 걸 제외하면 주요 과목 학원은 전혀 안 보내고 있다. 중학교 때는 다시 국제학교로 옮길 계획을 하고 있어서다. 현재는 피아노·수영·댄스 등을 배우고 있다.

엄격한 교칙, 학교 방문하는 부모 옷차림도 규제

학생들이 초등학교 성취평가시험(UPSR)에서 받은 성적표를 들고 웃고 있다.

한국보다 교칙은 더 엄격하다. 초등학생도 전부 교복을 갖춰 입어야 하고 학교에서 규정한 하얀 운동화 외에 검은 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교칙에 어긋난다. 두발 규제도 있는데, 여학생은 귀밑 1센티미터다. 외부에서 댄스강좌를 듣는 학생이 정식으로 확인증을 받아오면 예외로 인정해 준다. 예전에 1980~90년대 중·고등학교에서 발레나 무용 전공하는 애들만 머리 길렀던 걸 떠올리면 된다. 그렇다고 머리를 자유롭게 풀어헤치고 다닐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의 백화점 직원이나 비행기 승무원처럼 핀을 한 후 망 안에 머리카락을 넣고 단정하게 다녀야 한다. 이때도 검은색이 아닌 분홍색이나 빨강색 핀을 하면 교칙 위반이다.

체벌도 있다. 예컨대 어떤 학생이 한 달에 지각을 10번했다고 하면 아침 조회할 때 지각 많이 한 사람을 앞으로 불러 내 혼낸 후 교무실에 데려가 손바닥을 한 대씩 때리는 식이다. 학부모들도 거기에 대해 거부감이 거의 없다. 체벌의 필요성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 달 정도 교과서를 챙겨오지 않는 학생을 내버려 두는 것보다 따끔하게 혼내서 잘못된 부분을 고칠 수 있게 돕는 게 진정한 교육이라고 여긴다.

엄격한 교칙은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에게도 해당하는데, 학교를 방문하는 부모의 옷차림도 규제한다. 학부모 총회나 교사 상담이 아니라 아이 등하교를 도우러 갈 때도 그렇다. 말레이시아는 한국처럼 근거리 배정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많다. 스쿨버스가 있지만 대부분 학부모들이 자동차로 등하교를 돕는다. 이때 반바지를 입거나 슬리퍼를 신지 못하게 아이를 통해 가정통신문을 보낸다. 학교에 갈 때는 바르고 단정한 옷차림을 해야 한다는 걸 부모가 먼저 보여줘야 한다는 거다.

이런 분위기를 통해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렀다. 학교는 정해진 규칙을 지키고 공부를 하는 곳이라는 걸 확실히 인식시켜 준 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학교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도와주는 걸 일체 금지한다. 학교에 사물함이 없어서 책가방에 책을 다 싸 갖고 등하교를 해야 하는데 엄마가 가방을 들어주면 안 된다. 평소에 학교에서 철저히 교육을 받은 덕에 부모가 도와주려고 하면 “선생님이 가방은 혼자 힘으로 들어야 한다고 했다”고 단호히 거절한다.

독립심을 기르는 데도 한 몫했다. 유빈이는 여섯 살 때까지 외둥이로 자라 그런지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도 엄마와 떨어지기를 싫어했고,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그러지 않을까 우려도 많았다. 하지만 등교 첫날 학교에서는 부모가 교문 안으로 들어가는 걸 제지했다. “아이 혼자 교실을 찾아가야 한다”는 거다. 처음에는 울먹이던 아이도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고는 혼자 사는 법을 터득했다.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나자 먼저 “혼자 가겠다”고 얘기하더라. 평소에 책이나 공책을 자주 잃어버리고 덤벙거렸던 성격도 많이 고쳤다. 자기 힘으로 준비물을 챙기고 숙제를 해 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응석을 받아준 게 아이를 의존적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생활이 아이의 성장에 좋은 밑거름이 될 거라 믿는다.

엄마=김형주(46·사업·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정리=전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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