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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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 가톨릭교회의 「성인」탄생은 한 교회의 경사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 성인은 우리역사의 풍상과 굴절속에서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지만 이것은 「옳음」과 「믿음」을 증거하는 의로운 행위에 대한 보상이기도하다.
바로 우리민족의 심저에 자리하고있는 강건과 경천사상에.대한 세계적 선망이며 상찬인것이다.
더구나 가톨릭의 한국 전래는 외래인의 포교에 의한 피동적 전파이기보다는 새로움과 옳음을 추구하는 우리 선각자들의 자발적이고도 능동적인 갈구에 의해 이루어졌다.
오늘 바티칸 교정청의 공식 기구와 절차에 의한 1백3인의 한국성인 선포가 다만 교회 내적인 행사나 경사의 범주를 넘는다는 의미도 바로여기에 있다.
세계적으로 바티칸이 성인으로 시성(시성) 한 인물은 모두 2천3백여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그 수는 2천4백여명으로 늘어났으며 그 가운데 4%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우리민족의 긍지를 높여주는 일임엔 틀림 없다.
인류의 연면한 역사률 보나, 교회사의 비중으로 보아도 그것은 놀라운 기록이며 진귀한 일이다.
더구나 바티칸은 전통적으로 시성절차에 있어서 중세적인 엄격과 배타적인 기준을 요구해 왔었다.
그러나 지난7월 바티칸은「2건이상의 공인된 기적」 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기준의 적용을 한국의 경우 면제했으며, 그동안 교회는 교회대로 성인대상자들을 위한 기도회와 현양대회를 열어왔었다. 한국가톨릭 신자들의 경건한 신앙심을 보여주는 의식이며 행사였다.
아뭏든 이런 노력이 오늘의 성인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제 한국가톨릭은 가톨릭교회사의중요한 장을 장식하는 위치에 올랐다.이것은 바로 교회의 양적 성장보다는 내적·질적 성장을 도모해야하는 새로운 사명의 부과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나라엔 『종교는 많은데 종교인은 없다』는 아이로니컬한 세평이 없지않다. 종교를 수와 물질의 집단으로 생각하려는 종교인들에 대한 가혹한 힐책이며 경종의 소리다.
물론 이것은 모든 종교에 적용되는 공통된 현상은 아니지만, 어느 일각이라도 사회나 사원의 이름을 달고있는 곳에 그런 힐책이 주어진다는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제 세계 가톨릭의 숭앙을 받는 성인을 1백3명이나 추대하게 된 한국가톨릭은 그 점에서도 무거운 책무와 사명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사제였으며 성인의 자리에 오르게 된 김대건신부는 이런 좌우명을 갖고 있었다.『너는 이겨레를 부모로 삼고,형제로 받아들여야한다』 여기의「너」는「모든 종교인」,「모든 교회」라는 말로 바꾸어 놓아도 결코 어색한 말이 아니다.
한국가톨릭의 「성인」은 초상화나 기록 속에서만 빛나는 인물이어서는 안된다. 이들은 오늘의 우리가운데에 살아 있어야한다. 순교자로서가 아니라 믿음과 옳음의 실천자로서, 빛과 소금의 증인으로서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땅에 살고있는 뭇사람들은 구름위의 종교보다는 발에 흙을 묻히고있는 종교를 갈망하고 있다. 하늘만 쳐다보는 신앙이 아니라 옳음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우리의 삶에 빛과 용기와 보람을 주는 신앙인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가톨릭은 그런 갈망과 요구에답하는 종교의 하나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오늘 성인의 탄생을 경하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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