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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점장 차장이 「개인적」으로 지보도장 찍어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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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해의 이 장사건, 올해의 상은혜화동지점 사건에 이어 「제3의 금융사고」로 금융계를 어수선하게 하던 영동개발진흥(대표 곽근배)이 26일 조흥은행 중앙지점에서 거액의 부도를 냄으로써 결국 표면화됐다. 영동개발진흥은 아파트건설을 전문으로하는 국내건설업체로 오래전부터 조흥은행중앙지점과 거래를해왔다. 많은 부동산을 갖고있는등 탄탄한 업체로평판이 나있던 영동개발진흥이 거액의 부도를 내고만것은 올해부터 금융긴축이 강화되면서 영동개발진흥측이 조흥은행중앙지점으로부터 거액의 어음지급보증을 받아 이를 단자(주로 영동개발진흥이 출자하고 있는 태평양투금)·사채시장등에서 할인해 써오다이름이 비슷한 영동개발(대표 김형목)이 명성사건과 관련, 세무사찰을 받으면서 시중에 융통되던 영동개발진흥의 어음들이 한꺼번에 결제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은행의 기업어음 지급보증 한도는 법이나 규정상 정해진 한도는 없으나 기업의 영업실적·신용상태.담보능력등에 따라 은행이정할수있는 내부한도가 있는데 문제는 영동개발진흥이 조흥은행중앙지점으로부터 상식적으로 이해할수없는 엄청난 규모의 지급보증읕 받아 할인해써왔다는것이다. 이 지보과정에서 적법한 절차없이 지점간부들이마구 은행지보도장을 찍어주었는데 은행측 설명으로는 총어음 지보액이 1천4백70억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중 일부만 제외하곤 은행모르게 지점장과 차장이 「개인적」으로 찍어준것이라한다.조흥은행판 김동겸사건이라할수 있다.
은행지보도장이 찍힌 영동개발진흥어음은 명동사채시장에서 아무런 의심없이팔려나갔는데 일부는 지보없는 어음도 있다한다.
은행지보도장이 찍힌것은결국 은행이 책임질것이므로 지불될것이나 신용으로돈을 빌려준 일부 단자회사나 무보증어음을 산사람들은 고스란히 손해를 볼수밖에 없을것이다.영동어음은 단자회사를 통해서도팔렸다. 이번 영동사건은 워낙 규모가 크기 때문에 주거래은행인 조홍은행은 말할것도 없고 금융계 전체가큰 타격을 받을것이다.
특히 조흥은행은 1천억원이 넘는 손해를 볼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로인한 신용질서의마비와 연쇄부도가 우려된다.
또 1천6백70억원에 이르는 어음사고는 어찌보면 이· 장사건, 명성사건등에 버금가는 한국의 가장큰 금융사고의 하나가 될것이다.
조흥은행은 이미 지난23일 이재천이사(수신담당)를 중앙지점장으로 위촉발령을 내는 한편 중앙지점이택구지점장과 양정환차장을 대기발령시겼고 전중앙지점 차장으로 현재 본점영업부에 근무하고 있던박종기차장은 최근 영동개발진흥의 사건이 표면화될낌새가 보이자 해외로 도피했다.
조흥은행은 이미 이달초부터 영동개발진흥의 어음결제가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재무부·은행감독원·단자사등과 사건해결을위한 접촉을 벌여오면서 영동개발진흥의 계열회사인 서일종합건설·도진실업등의수표·어음등으로 하루 하루부도를 막도록 허용해왔었다.
이번 금융사건은 명성사건이 채 수습되기도 전에금액상 이·장,명성사건에맞먹는 규모의 금융사고가 지점선에서 또다시 발단됐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뿐 아니라 은행지보를 받아 할인해 쓴 그 막대한자금을 도대체 어디에 쏟아부었느냐는 것이 큰 의문점이 되고있다.
○…영동개발진흥에 대한 첫소문은 역시 증권시장으로부터 터져나왔다. 공교롭게도 영동개발진흥이 아파트분양 (서울강남구방이동)을 처음 시작하는날에 「1천억원규모의 부도가 난다」는 제1보가 흘러나왔고,주가는 이내 폭락사태를 빚었다. 문제의 「영동」이 상장기업이 아니더라도 워낙규모가 커 명성사건에 연이은 제2의 금융충격으로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소문에대해 해당은행인 조흥은행과 영동개발진흥측은 유사한 이름인「영동개발」의 와전이라며시치미를 뗐다.
그러나 당사자들의 이같은 절대부인에도 불구하고 증권시장을 중심으로 「제2의 명성사건」이라는 소문은 꾸준히 나돌았고 이름있는 전주들은 일제히 자금회수작전에 들어갔다. 특히증권회사의 완매자금이 급속히 빠져나간것도 이때문이었다.
○…정부측은 처음부터 쓸데없는 루머로 취급하고 태연한 자세를 취했다.
강경욱재무장관도 출국(IMF층회 참석차) 전에 기자들의 질문을받고 『별문제없다』 며 한마디로 일축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소문은 점차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결국 은행측도 『지급보증을 상당액 해준것이 사실이다』『영동이 자금사정이 매우어러워 변칙적으로 하루자금(타입대)으로 버텨나가고 있다』는 점등을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사건에 대한 정부의 진상파악은 사실상 소문초기부터 시작된것으로보인다.
다만 명성사건의 파문이너무 컸고 또 그것이 아직 수습되지 않았는데 제2의 사건이 터지면 너무충격이 크므로 내부적으로매우 조용하게 조사및 수습방안을 논의해 왔고, 결국달리 묘책을 찾지 못한채 지난주말 부도방침을 굳혔던것으로 알려지고있다.
○…문제의 어음지급보증1천6백70억원중에서 단자회사를 통해 할인한 액수는 5백억∼6백억원정도인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따라서 나머지 1천2백억원은사채시장에서 조달해 썼다는 이야기다.
한편 서일종합건설과 영동개발진흥이 출자회사인 태평양투자금융을 통해 발행한 CP (신종기업어음) 는모두 28억원으로 결국 어음소지자의 손해가 불가피할둣.
○…영동개발진흥그룹의 창업자며·실질적 지배자는 곽근배사장 형제들의 어머니인 이복례여사 (64) 로알려졌다.
이여사는 경성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인텔리로서 사채및 증권가등에서는「이할머니」 로 널리 알려진 큰손.
영동개발진흥회장 서일 종합건설회장·도진실업회장·주식회사 온양제일호텔회장 일복기업회장 등을 맡고있는이여사는 몇백억원을 손쉽게 동원할수있는 「큰손중의큰손」으로 알려지고있다.
처음 고향인 온양서 여관과 호텔로 시작해 서울강남 「영동땅부자」로 기반을 잡았던 이여사는 둘째아들 곽근배씨(43)에게 영동개발진흥·서일종합건설 등을, 세째아들 곽경배씨(36)에게「조다시」가방으로 이름을 얻고있는 도진실업등을 맡겼다.
부동산 붐을 타고 「영동땅부자」의 진가를 한껏 누리던 이들이 갑자기 기울기 시작한것은 최근 일어났던 금융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도진실업 대표이사직등을맡고있는 곽경배씨는 82년5월 이철희·장영자사건당시 2백33억원의 어음을 할인해준 사채전주로서 단기금융법위반협의로 구속된 바 있다. 그때 세무조사를 받아 상당한 세금까지 추징당하고 현재 미국에 유학중이다.
81년 소득랭킹 6위로서 총12억6천만원소득에 7억7천만원의 세금을 냈다.
이회장은 자기방에서 꼭믿는 여직원과 함께 직접자금관리를 함으로써 회사의 담당 임원들도 실제자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모르며 평소 다소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으나 이번일이 터지고난 다음에야 진상을 알게 되었다고 놀라와했다.
곽근배사장과 교분이 있는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곽씨를 가리켜 『잘 생긴 촌사람형으로 돈번 티를 내지도 않고 상당히 겸손했던 사람』 이라고 평했다.
영동개발진흥은 한국 대기업의 모임인 전경련회원.
○…영동개발진흥이 분양한 서울방이동 반도아파트계약자들은 어떻게 될까.
관계당국이 고려중인 방안은 ▲은행관리하에 아파트건설공사를 끝내는 것 ▲입주자들이 조합을 구성, 새업자를 선정해 자체적으로 아파트틀 짓는 방법 ▲연대보증업체·건설공제조합이 짓게하는 방법등으로 계약자들에게 큰 피해는 없을것같다.
지난 9월13일 영동개발진흥이 분양한 아파트는 모두 9백36가구.
착공만 했을 뿐인데 아파트부지는 은행등에 담보로 잡혀있지 않아 은행등채권자들이 아파트에 손을댈수는 없다는것.
따라서 은행이 영동개발진흥을 관리, 아파트건설공사를 끝내는 방법도 있고계약자들이 조합을 구성, 연대보증업체들에 공사를 마치도록 하는 방법도 있는데 은행관리가 확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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