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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일본의 네오콘' 전진 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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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고이즈미 준이치로(앞줄 가운데) 일본 총리가 31일 새 내각 각료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아소 다로(앞줄 왼쪽에서 첫째) 총무상은 외상에, 아베 신조(넷째줄 오른쪽에서 둘째)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관방장관에 임명됐다. [도쿄 AFP=연합뉴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31일 단행한 개각의 핵심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과 아소 다로(生太郞) 외상 등 매파 인사의 전진 배치다.

'일본의 네오콘'에 비유되는 이들의 전면 부상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역사 인식 문제를 둘러싼 한국.중국 양국과의 갈등이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 한.일 관계에 먹구름=경제 분야 각료를 맡을 것으로 예상되던 아소의 외상 기용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당초 외상에는 한국.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적합한 인물의 기용이 점쳐졌었다. 그런 점에서 야스쿠니 참배 옹호론자인 아소의 외상 기용은 대미 관계를 최우선시하고 상대적으로 아시아 외교를 경시해 온 고이즈미 외교 노선이 계속 유지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지난주 일본을 방문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일본 측에 요구한 제3의 추도시설 건립 문제도 실현이 어려워짐에 따라 한.일 관계 개선 전망이 어두워졌다.

국내 정책은 물론 외교 분야에서도 막강한 발언권을 갖는 관방 장관에 강경파 아베 신조를 기용한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아베의 등장은 최근 어렵사리 정부 간 대화 재개에 합의한 북.일 관계 개선에도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예상이다.

◆ 명암 엇갈린 차기 대권 주자들=내년 9월로 임기가 끝나는 고이즈미는 개각 단행에 앞서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을 주요 포스트에 앉혀 능력을 발휘하도록 경쟁시키겠다"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일본 정가에서는 아베, 아소 이외에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등 4명이 포스트 고이즈미 감으로 거론돼 왔다.

이번 인사에서 아베와 아소에 대한 고이즈미 총리의 신임이 가장 두터운 것으로 확인됐다. 다니가키는 고이즈미 개혁의 핵심 포스트인 재무상에 유임됐다. 반면 후쿠다 전 관방장관은 입각하지 못했다. 그는 중국 인맥이 두터워 외상 물망에 올랐으나 고이즈미 총리와 노선 차이로 벌어진 틈을 극복하지 못했다.

아베를 총리 비서실장 역할을 하는 관방장관에 기용한 것은 특히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아베는 40대에 자민당 간사장으로 발탁되는 등 고속 승진을 거듭했으나 일본 정계에선 아직 소장급인 5선에 불과하고 각료 경험이 없다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요직 중의 요직인 관방장관에 발탁됨으로써 이런 약점도 씻게 됐다.

◆ 개혁은 계속된다=새롭게 출범한 고이즈미 내각의 가장 큰 임무는 미완성 상태인 고이즈미 개혁을 마무리하는 역할이다. 우정 민영화에 이어 지방정부에 대한 세원 이양 등 재정.세제 개혁, 의료제도 개혁 및 연금 개혁 등이 그 과제다.

이 같은 고이즈미의 의중은 당무를 총괄하는 간사장에 다케베 쓰토무(武部勤)를 유임시킨 데서 읽을 수 있다.

다케베는 본인 스스로 "위대한 예스맨"이라 자처할 정도로 고이즈미의 개혁 정책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 개혁의 브레인 역할을 해온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경제재정 담당상이 요직인 총무상으로 자리를 옮겨 내각에 잔류한 것도 의미가 크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아베 관방장관
우익교과서 후원 차기총리 1순위

차기 총리감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늘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국민적 인기가 높다. 젊음과 명쾌한 발언이 인기의 비결이다. 과거사 문제와 대북.대중 외교에서 고수해 온 강경 입장도 그의 일본 내 입지를 강화시켜 주고 있다. 아베는 실질적 효과가 없다는 자민당 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북 경제제재를 단행해야 한다는 지론을 굽히지 않고 있다. 우익 역사 교과서의 후원자이기도 한 그는 "종군위안부는 언론이 만들어 낸 거짓말"이라는 발언도 했다. 개각 발표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옹호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A급 전범으로 체포됐다 복권된 뒤 총리를 지냈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외손자이며 부친은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이다. 고속 출세가 오히려 당내 견제를 불러 차기 경쟁에 불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아소 외상
"한국전 덕 봤다" 잇단 망언 논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경(輕)무장' '경제 중시'로 대변되는 실용주의를 일본의 국가 노선으로 자리 잡게 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의 외손자다. 하지만 안보 문제와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요시다의 노선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2003년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희망해 이뤄졌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고, 올 5월에는 "다행스럽게 한국전쟁이 터져 일본에 도움이 됐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해선 "총리가 야스쿠니에 가지 않는다고 일.중 관계가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또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의 당연한 권리"라며 평화헌법 개헌에 대해서도 적극적이다. 아소의 본가는 일제 시절 조선인 징용자 1만600여 명이 끌려가 일했던 아소 탄광을 경영했다.

'고이즈미 시스터스' 발탁
고이케 이어 이노구치를 여성 각료로

원로정치의 전통이 강한 일본에선 5선 의원도 소장파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번 인사에서 초선의 여성 의원이 각료가 됐다.

남녀공동참여 및 소자화(少子化) 담당 대신으로 임명된 이노구치 구니코(猪口邦子.53)가 주인공이다. 지난달 총선에서 정치에 입문한 이른바'고이즈미 시스터스'의 대표 격이다. 이노구치는 재무성 관료 출신의 가타야마(片山) 사쓰키,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사토(佐藤) 유카리 의원과 함께 여성 표를 결집시켜 자민당의 압승에 크게 기여했다.

한때 이노구치는 외상 발탁설이 나돌았다. 국제정치학자로 외교 감각을 갖추고 외국어에 능한 데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과의 개인적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지난해 라이스 장관의 방일 때 그가 재직 중이던 조치(上智)대학 강연을 성사시킨 적도 있다.

또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환경상이 유임돼 고이즈미 내각의 여성 각료는 두 명이 됐다. 방송 앵커 출신인 고이케는 9.11 총선에서 우정 민영화 반대파의 선봉인 고바야시 고키(小林興起) 의원의 지역구(도쿄 10구)에 이른바 '자객'으로 투입돼 자민당 선풍을 일으킨 일등 공신이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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