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대선후보 낙선 목적, 반대 글 조직적 전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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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9일 국정원 댓글 사건 항소심이 열린 서울고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신인섭 기자]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하여 공격한다면 이것은 손해가 될 뿐이다(攻乎異端 斯害也已·공호이단 사해야이).”

9일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재판장인 서울고법 김상환 부장판사는 논어 ‘위정’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나와 다른 쪽에 서 있는 상대방에 대한 공격과 강요는 결국 심각한 갈등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기관이 헌법에 의해 보장된 정치적 기본권의 범위 안에 있는 국민의 생각과 의견을 심리전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의 댓글 활동이 안보를 위해 불가피한 심리전 활동의 범주를 벗어나 공직선거법 등을 위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다.

 이날 항소심 재판부가 최대 쟁점이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것은 국정원 심리전단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일관된 지시에 따라 ▶낙선운동을 목적으로 ▶조직적·체계적으로 야당 후보에 대한 반대 댓글 전파 활동을 벌였다는 점을 인정한 결과다. 재판부는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결정된 2012년 8월 20일 이후 심리전단 소속 4개 팀 직원 70~80명은 찬반 클릭·댓글·트윗 등을 통해 안철수·문재인 후보 비방과 민주당 반대 등 특정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 낙선 목적의 선거운동을 함으로써 선거개입 범죄를 실행했다”고 밝혔다. 심리전단 활동을 ‘과거에도 수행한 사이버 심리전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또 “최근 선거운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미디어를 통해 유권자에게 전해지는 감성적 선거 행위로 심리전단 활동은 능동적·조직적인 선거운동의 형태와 요건을 갖춘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이버공간의 특성을 이용해 중립을 유지해야 할 국가기관이 국민을 가장해 활동했다는 점에서 비난의 소지가 높다”고 했다.

 특히 정치·선거 글 작성에 이용된 트위터 계정을 1심 175개에서 716개로 추가 인정해 총 27만8139건을 위법한 댓글로 판단했다. 이 중 2012년 8월 21일부터 작성된 13만7175건은 선거에 영향을 미친 글로 보고 선거법 위반의 근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2012년 27만여 건의 전체 트윗을 분석해 1~6월까지 선거 글이 5~16%로 낮은 비중을 차지하다 대선이 실시된 12월 83%까지 치솟았다는 그래프까지 제시했다. 재판부는 “매일 활동의 주제와 방향이 엄격한 지휘 명령 체계에 따라 전해지면서 심리전단 직원들의 밀행에 의해 신속·정확하게 집행됐고 사후 보고가 이뤄졌다”고 거듭 강조했다.

 항소심은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과 달리 원 전 원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곧바로 법정구속까지 했다. 재판부는 양형(형량 결정)과 관련해 2007년 국정원이 발간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보고서를 인용했다.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은 민주주의 근본을 무력화하고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위협이며 그중 ‘선거 개입’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되거나 합리화될 수 없다”는 대목이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국정원의 소중한 기능과 조직을 특정 정당 반대 활동에 활용했다”며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 행동으로 엄단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판결에 “ 항소심에서 검찰 주장이 받아들여진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는 것 같다”며 “판결문 내용을 분석해 상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원 전 원장 변호를 맡았던 이동명 변호사는 “굉장히 실망스러운 결과”라며 “의뢰인을 만나보고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글=전영선·백민정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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