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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증세-복지 논쟁만 있는 늑장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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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현일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9일 오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현일훈
정치국제부문 기자

9일 국회 본관 406호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2015년도 중점 추진과제’에 대한 대법원의 업무보고가 있었다.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의 업무보고가 한창 진행 중일 때 회의장이 술렁거렸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이후로 여야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팀에 소속됐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 제청건’ 등을 두고 공방만 벌였다.

 이날 국회 본관 6층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상황도 비슷했다.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료 개편안 등을 보고하는 자리였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은 문형표 복지부 장관을 향해 “(건보료) 백지화에 청와대가 개입한 것 맞지 않느냐”고 따졌다. 오후 속개된 회의에서 문 장관이 새정치연합 김성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통해 지난달 27일 청와대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정회와 휴회를 반복했다. 결국 문 장관은 보고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2월 임시국회가 상임위 문을 열자마자 잇따라 파열음을 내고 있다. 국회 상임위가 겉도는 건 익숙한 광경이지만 문제는 일선 현장의 한숨이 더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국립대 등록금에 포함된 1조3000여억원의 기성회비를 둘러싼 입법이 여야 갈등으로 늦춰지면서 일선 교육 현장에선 발만 동동거리고 있다. 기성회비는 국립대 운영비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2월 안에 대체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면 기성회 소속으로 채용된 교직원 5500명이 실직 위기에 놓이게 된다. ‘상가 권리금 법제화’ 문제도 늑장 입법으로 역풍이 불고 있다. 상가 점포주들이 법 개정 전에 임차인과 계약을 정리하면서 쫓겨나는 세입자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외에도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 등 12개 경제활성화 법안이 여야 간 대치 속에 먼지만 쌓여 가고 있다.

 증세-복지 논쟁에 이어 2월 국회가 각종 현안을 두고 정쟁 조짐을 보이자 정치권에선 한탄 섞인 불만도 흘러나왔다.

 새누리당 정책통인 강석훈 의원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해결하고 논쟁을 이어가면 안 되겠느냐”고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경제가 곤두박질하면 다시 날아 보려고 날개라도 파닥거려 봐야 하는데…. 이 논쟁에 지금 여야가 모든 걸 다 쏟아부어야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자를 붙들고 한참을 토로했다.

 경기 침체로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증세냐 복지냐’의 기로에 선 여야가 해법 찾기에 나선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민생법안 심사를 태만히 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입법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현일훈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