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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논쟁 교육환경의 개선이 선결|교권보호법 추진계기로 찬반 논쟁 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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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교육에서의 체벌논쟁은 동서고금을 통해 계속된 논쟁이다. 그러면서도 항상 새로운 논쟁이다. 오늘도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할 것이냐, 아니냐로 고민하고있는 교사나 부모는 결코 적지 않다.
바야흐로 우리사회도 이제 쳇바퀴 돌 듯 무익한 체벌논쟁은 경계해야겠지만 체벌에 대한 수수방관적 태도를 버리고 확고한 입장을 정립할 때가 아닌가하는 의견들이 대두되고 있다.
대한교련은 최근 민정당이입법 추진중인 교권보호법에, 교육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훈육적 징벌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그 징벌의 종류와 한계를 대통령령으로 정해달라고 관계기관에 건의했다.
여기서 「훈육적 징벌」이 체벌을 포함하는 것이라면 교사가 학생에게 체벌을 가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교권보호의 차원에서 거론한 점은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체벌에 대한 찬반논쟁 자체에선 아무런 결론이 나올 수 없다.
체벌을 가해선 안 된다는 교육상의 원칙도 선명하게 확인되지만 그 불가피성으로 무장한 현실론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또 체벌은 현실적으로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홍기형 박사(한국교육 개발원)는 『체벌대상인 동일한 행동도 교사자신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체벌이 가해지기도하고 안 가해지기도하며, 대부분의 체벌이 계획적이라기보다는 우발적·감정적이어서 체벌 자체의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모호성은 체벌의 역기능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마다 체벌의 허용과 금지를 달리 규정하는 미국에서도 실제로 체벌이 가해지는 정도는 어디나 엇비슷한 정도라고 밝히고 체벌이 특정한 법규의 일률성에 맡길 만큼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보았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이 국민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전국의 체벌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 교사 중 83·9%가 체벌을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남녀교사별로는 별 차이가 없었으며 도시보다는 농촌이, 경력이 많은 교사보다는 적은 교사가 더 많은 체벌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업분위기를 망치는 아동」에 체벌을 주는 교사가 전체의 73·4%로 가장 많았다.
이것은 우리 교육현장에서의 체벌현실이며 우리의 체벌논의는 이 현실에 토대를 두어야 할 것이다.
왜 체벌이 가해지고 있는가 하는 진단이 중요한데, 급한 과제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학교교육현장의 문제다. 다수 교사들은 과밀학급에서 「수업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체벌과 같은 위압적인 통술방식을 쓰고있다.
곽병선 박사(한국교육개발원)는 『한 교사가 대다수 학생을 지도하다보면 친절한 정보보다는 획일적·지시적 통제를 가하기 쉽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통제방식의 하나로 체벌이 가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여기에 수업개선의 아이디어조차 받아들이기 힘들만큼 밀집된 교실공간, 교사와 학생간의 인간적 접촉기회부족 등은 수업과정에서 체벌이란 위압적 통제방식을 더욱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교실은 학생 1인당 바람직한 면적인 1·4평방m이상을 훨씬 못 미치는 1·1평방m이며, 교사의 학생 1인당 평균개별접촉시간은 전국 3· 1분, 대도시2·9분에 불과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가정교육과 관련된다. 어른이 아이에게 갖는 전통적인 권위주의를 바탕으로 어린이는 좀 맞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통념화돼있다. 어려서부터 자주 맞은 아이는 더 강도 높은 매를 필요로 할만큼 매에 대한 강화이론이 성립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어려서부터 매에 아주 길들여진 어린이는 교사의 매를 은근히 요구하는 지경에까지도 이른다는 것이다.
결국 체벌에 대한 논쟁은 학교교육·가정교육·사회교육전반을 뚫는 근원적인 시각에서 그 처방을 논의해야지 단지 체벌이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단순논쟁만으론 무익하기 짝이 없다는 얘기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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