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낳는 건 엄마 직장이 좌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서울의 한 사립대 병원에 근무하는 신모(35·여)씨는 세 살짜리 아들을 뒀다. 그는 “둘째를 낳을 생각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평일에는 아들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주말에는 신씨 부부가 돌본다. 신씨는 "닷새간 격무에 시달리다가 주말이면 파김치가 돼 아이를 겨우 돌본다”며 “아이를 키우는 기쁨은 적고 부담만 큰 상황에서 우리 부부는 하나로 족하다고 결론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지방의 한 국책 연구기관에 근무하는 김모(29)씨는 지난해 출산 후 현재 육아휴직 중이다. 올 하반기에 복귀할 예정이다. 김씨는 둘째를 낳을 생각이다. 그는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는 행복이 쏠쏠하다”며 “둘째를 낳으면 추가로 육아휴직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육아휴직 사용에 대해 눈치를 주지 않는 분위기다. 복귀 후 불이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앞으로 30년간 더 다닐 텐데 잠시 불이익이 있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외동딸(7)을 둔 유통 대기업에 근무하는 양모(42) 차장은 “아이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아 낳았지만 둘째는 엄두가 안 난다”며 “둘째 낳는 건 엄마 직장이 좌우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성들이 근무하는 직장에 따라 추가 출산 의사가 엇갈린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여성은 100명 중 61명(61.4%)이 둘째를 낳을 의사가 있는 반면, 민간기업에 근무 하는 여성은 47명(47.1%)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근무 직장에 따라 추가 출산을 희망하는 비율의 차이가 14.3%포인트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6세 미만 자녀를 둔 취업 여성(25~39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보사연은 이를 토대로 작성한 ‘취업여성의 출산행태와 정책과제’ 보고서를 8일 공개했다.

 직장 형태에 따른 출산 의사의 차이는 이용 가능한 육아 지원 제도와 관련있다. 민간기업에 다니는 여성은 공공기관 근무 여성보다 일·가정 양립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이다. 출산휴가를 이용할 수 있다고 응답한 여성은 공공기관이 69.9%, 민간기업이 58.2%였다. 육아휴직 역시 공공기관에 다니는 여성 중 68.9%가 이용할 수 있다고 응답한 반면 민간기업 여성 중엔 52.3%만이 가능했다. 이용 가능한 직장 어린이집이 있다고 응답한 공공기관 근무 여성은 16%로, 민간기업 응답자(4.3%)의 4배 수준이었다.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의 경우에도 공공기관 근무자(25.2%)는 민간기업(12.3%)보다 사용 가능성이 컸다.

 민간기업에 다니는 여성들은 출산 후 직장을 그만두는 등 경력 단절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번 조사에서도 민간기업 여성 중 17.3%가 추가 출산할 경우 경력 단절을 예상한 반면 공공기관 근무 여성 중엔 7.9%만이 이를 우려했다. 실제로 민간기업에 다닌 여성이 공공기관에 다닌 여성보다 임신이나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을 경험한 비율이 3배 이상 높았다. 경력 단절 당시 다니던 직장 유형별로 보면 민간기업에 근무하던 여성의 경력단절 비율은 24.7%로, 공공기관 근무 여성(7.8%)의 3배였다.

 연구책임자인 이삼식 보사연 인구정책연구본부장은 “출산휴가, 육아휴직 같은 일·가정 양립제도가 가임기 여성의 출산 의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며 “민간기업도 공공기관만큼 가족친화적 직장 문화 조성과 출산·육아휴가 시 대체인력 서비스 등을 종합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