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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소원은 믿고 맡기는 어린이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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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고란
고란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고 란
정치국제부문 기자

최근 어린이집에서 벌어지는 학대 사건은 ‘전국노래자랑’이다.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인천·부평·정읍·시흥·남양주·울산…. 누가 더 엽기적으로 아이들을 괴롭힐 수 있을지 경쟁하는 것 같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내 아이의 어린이집이 곱게만 보일 리 없다.

 학대 사건이 이슈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다.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가 찍혔다. 상대가 “전데요”라고 입을 뗀다. “네?” 처음 듣는 목소리에 당황했다. 저쪽은 당연하다는 듯 “OOO 엄마 아닌가요?” 되묻는다.

 복직 후 아무도 나를 ‘OOO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를 그렇게 부를 사람은 어린이집 선생님밖에 없다.

 전화의 요지는 이랬다. 아이가 플라스틱 장난감 블록을 가지고 놀다 입술에 상처가 났단다. 놀랄까봐 미리 전화로 얘기한단다. 혹시나 학대를 의심할까봐 전화한 듯싶었다.

 저녁에 남편이 아이 얼굴을 보더니 심드렁하게 말한다. 그 상처 전날 생긴 거라고. 어린이집은 요즘 원아 관리 ‘강조기간’이다. 어린이집에서 ‘오버’한 거였다.

 오버가 믿음의 역치(?値:최소한의 자극)를 건드렸나. 마음에 의심의 균열이 갔다. 그러고 보니 성역처럼 집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현관문에 서서 아이를 넘겨줘야 하는 게 께름칙하다. 그렇게 헤어져야 아이가 엄마 없이도 적응을 잘해서라는데 찜찜하다. 폐쇄회로TV(CCTV)도 없는 마당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게 뭐람.

 퇴근 후 먼저 확인하는 어린이집 알림장도 미심쩍다. 알림장에는 그날 아이가 한 일이 적혀 있다. 주어는 언제나 ‘예쁜 OOO’이다.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그거 믿지마. 맞은 아기도 알림장에는 잘 놀았다고 썼대.”

 의심은 의심을 낳는다. 잘 자던 아이가 자주 깬다. 원래 따로 재웠는데 요즘엔 사람이 옆에 있어야만 잠을 잔다. 내가 출근하면서 생긴 버릇이라고 생각했는데 출근 시점과 어린이집 등원 시점이 묘하게 맞물린다.

 의심은 끝이 없다. 사람은 못 믿겠으니 그나마 믿을 건 시스템일까.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보육교사 자격을 국가고시로 전환하고, 보육교사의 처우 수준을 높이는 등의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한다.

 그러면 끝일까. 믿을 만한 시스템을 갖췄다는 국공립 어린이집에서도 학대 사고는 있다.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시스템은 확률을 낮출 뿐이다. 모든 시스템에는 오류가 있을 테고, 그 오류의 언저리에서 누군가는 피해를 볼 것이다.

 그래서 일단 믿기로 했다. 아이의 어린이집을, 정확히는 선생님을. 세상은 사람들의 선의로 움직인다.

 시스템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고란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