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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만능」탈피 자율·책임 실험|중병앓는 소 경제…수술시작한 「안드로포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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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소련경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소련공산당서기장 「유리·안드로포프」는 지난해말 집권한 후 여러차례 경제체제의 개혁을 공언해왔으며 최근에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몇가지 구체적 시책들도 발표했다. 물론 이제까지 나온 정책들은 조심스런 실험적 시도에 머물고 있지만 70년대 후반부터 심한 침체병을 앓고있는 소련경제가 어떤 식으로든 치료를 받아야 할때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안드로포프」경제정책의 향방을 주목하지 않을수 없다.
전후최저의 공업성장률, 지난해까지 4년연속의 흉작, 그리고 「레이건」미행정부의 대소 강경노선과 군비증강에 맞서기 위한 군사비증가압력.
지난해11월 「안드로포프」가 크렘린의 권좌에 올랐을 때 소련경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기업이나 국영농장·집단농장의 자주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경제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실험을 행하고 형제나라들의 컬럼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취임후 첫 중앙위총회에서 연설한 이후 「안드로포프」는 기회있을 때마다 「경제개혁」을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해왔다.

<흉작·군비로 골치>
특히 지난 8윌15일에 있은 원로당원들의 집회에서는 「계획화」「경영관리」「경제메커니즘」등의 수정필요성을 호소하면서 『「완전무장」하여 신5개년 계획(1986∼90년)에 착수하기 위해』이같은 수정작업을 실행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함으로써 다음 경제계획 기간까지 남아있는 2년동안을 경제개혁의 준비기간으로 할 생각임을 분명히 했다.
50년대 후반엔 헝가리 주재대사, 67년부터 82년까지 국가보안위원회(KGB)의장으로 일하면서 소련경제의 약점을 잘 알게된 「안드로포프」로서는 소련의 현 경제상황을 지켜보며 일종의 위기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안드로포프」가 개혁의 제1단계로 내세운 것이 내년l월부터 실시될 「경제실험」이다.
이는 이제까지 중앙의 통제에 얽매여 있던 기업들에 대해 계획책정단게에서 보다 큰 자율성을 줌과 동시에 좋은 성적을 올린 기업은 성과에 맞춰 후한 대우를 해준다는 것. 말하자면 경제합리성의 추구에 큰 비중이 주어진 셈이다.
소련식 사회주의경제의 최대특징이 모든 단계에서의 「계획화」에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중앙의 지시와 통제에 기초한 계획의 경제가 너무나 비대화한 결과, 집약적인 발전이 저해받고 있음을 많은 서방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계획지상주의는 소련의 매스컴도 끊임없이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최근에도 우크라이나공화국의 공업건설상이 『여러차례의 이의신청에도 불구하고 당이나 상부기관의 압력으로 전혀 실현불가능한 건설계획을 올해만도 40개나 강요받았다』고 중앙의 계획당국을 비판(사회주의공업지)했는가 하면 당기관지 프라우다에는 계획이 세워졌다는 이유만으로 5백명이상의 노동자가 전혀 수요가 없는 제품을 매일 만들어내고 있는 섬유공장의 예가 소개되기도 했다.

<2년간 개혁준비>
「경제실험」의 첫째 목적은 이러한 폐단을 고치자는 것. 동시에 기업에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원가절감과 원료절약, 노동생산성 향상등 기업의욕을 되살리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이를 위해 근로자들의 임금기금 운용이나 보너스 지급등 물질적 자급수단을 적절히 구사할수있는 기업간부들의 권한을 대폭 확대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노동자 l천명으로 완수할 예정이던 생산계획을 9백명만을 써서 끝냈다면 1백인분의 임금기금은 기업측이 자유로 쓸수 있다. 물질적 자극면에서는 기업이 다른 기업과 맺고있는 제품조달계약을 완전히 이행한 경우 원자재공급을 늘려주는 등 혜택이 따른다.
단,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는 이제까지 보다도 엄격한 벌칙이 부과된다. 따라서 기업간부는 권한이 확대됨과 동시에 책임도 커지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큰 목적은 기업의 자주성확대를 소련경제 최대약점의 하나인 기술혁신의 촉진제로서 이용하는 데 있다.
지정된 실험기업은 새기술의 개발과 도입을 이제까지처럼 상부기관과 상의하지 않고 할수있으며 이를 위한 자금도 보장돼있다.
또 이 부문에서 실적을 올린 기술자에게는 특별 보너스도 약속돼있다.
이런 경제실험에 못지않게 「안드로포프」가 중요시하고 있는것은 노동규율의 확립이다.
「안드로포프」는 취임이래 「브레즈네프」시대의 「안정과 정체」의 18년동안 느슨해진 모든 분야에서의 규율을 확립하고 기강숙정에 나서 일종의 「정풍운동」을 전개해왔다.
그 전형적인 예는 경찰총수인 「시촐로코프」전내무상의 해임 및 당중앙위에서의 추방이다. 지방당조직의 새 점검도 진행중이고 상당한 수의 하급당간부가 엄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있다.

<음주 출근엔 처벌>
동시에 일반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브레즈네프」시대의 안일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경고해왔다. 8월7일에 공표된 노동규율강화에 관한 당·정부규정은 이러한 「안드로포프」체제의 기본방침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것은 최고회의 간부회의령으로 입법화되어 9월l일부터 실시되기 시작했다.
처벌의 예를 들면 술에 취해 직장에 나타난 노동자는 3개월간 급료가 낮은 직장에 전근시키며 술주정이 원인이 되어 목이 달아난 경우는 다음 직장에서 보너스가 반으로 줄어든다.
결국 노동자의 규율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노동생산성이 향상될 여지는 꽤 남아있다는것이다. 그것은 경제구조의 변화없이 규율강화만이 크게 강조된 금년 전반의 경제실적이 작년보다 훨씬 호전된 것으로도 입증된다.
경제실험·노동규율 강화에서 공통되고 있는 점은 우수한 노동자에게는 급료를 비롯, 주택·휴가등에서 좋은 대우를 해주기로 약속해 질나쁜 노동자와는 분명히 차이를 둔다는 생각이 명확히 표명되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안드로포프」정부의 경제개혁에 대해 고방전문가들은 ▲경제실험의 범위가 중앙정부의 약 60개 부처가운데 중공업·운수기계제작성등 2개부처와 지방 3개부처등으로 국한돼 소폭에 머물렀으며 ▲기업의 자주성확대와 동시에 중앙통제에는 변함없음이 강조되고 있고 ▲자주성 확대의 내용이 명확히 되어있지않고 ▲가장 중요한 시장 메커니즘의 도입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데다 ▲노동자들이 규율강화조치에 순수하게 따라줄지는 의문이며 ▲기득권침해를 우려하는 경제관료의 저항이 크리라는 등 「안드로포프」개혁정책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개인택시」주장도>
얼마전 경제의 중앙통제를 비판하는 소련정부 비밀보고서의 내용이 모스크바의 일부 서방기자단에 흘려져 크게 보도된 사건도 크렘린내의 경제개혁파와 이에 저항하는 보수파의 암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련경제를 개혁한다는게 결코 쉽지않다는 사실을 이제까지 수많은 시도가 좌절로 끝난 역사적 경험을 봐도 분명하다.
「안드로포프」자신도 지적한 바와같이 소련경제는 거대하고 복잡하여 입시에 개혁조치를 도입하는데는 큰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스크바의 일부 서방관측통들은 대대적개혁은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취임후 9개월만에 이만큼의 조치를 내놓은 수완과 그 신중한 처사를 평가하기도 한다.
아뭏든 경제실험에서는 부분적으로나마 기업에 가격결정권을 주는 등 퍽 대담한 시도도 예정돼있고 한편으로는 개인택시를 허가해야 한다는 주장(소비에츠카야 로시야지)도 나오는등 경제개혁추진의 소리는 높아질 전망이다. 느릿느릿하지만 개혁을 향한 옴직임만은 뚜렷이 나타나고있는 것이다.
【파리=주원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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