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왜 항로를 벗어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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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충격적인 소식에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참사를 사전에 막을수 없었는가 하는 안타까움에 발을 구르게 된다.
KAL기가 사고순간 소련영공을 침범했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사고는 KAL의 운항체제에 문제점이 있음을 다시한번 드러낸 사고로 보인다.
항로를 유지해주는 계기와 승무원들이 무얼 했을까 하는 의문점 외에도 당초부터 안전항로를 찾아 안전한 방식으로 운항하지 못했을까 하는, 뼈저린 아쉬움이 남는것이다.
KAL측에서는 ▲연료절약여부 ▲운항시간 감소여부를 놓고 조종사의 우수성을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조종사들은 안전보다는 어떻게 하면 운항거리와 운항시간을 줄일수 있을까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결국 조종사들에게 강요되는 「무리한 운항 강행방침」에 따라 승무원들은 휴식도 없이 10여시간씩 계속 근무해야하는 부작용이 일고있다.
78년4월의 무르만스크 사고때도 지적됐듯이 무리한 운항은 승무원들의 기강해이라는 새로운 부작용을 낳고 여기에 미미한 계기고장이라도 겹치면 사고는 대형화할 수밖에 없는 실정.
「기장의 판단착오」로 결론내려졌던 80년11월의 김포공항착륙 화재사고도 무리한 운항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무리한 운항은 적은 보유댓수로 여러노선을 숨가쁘게 뛰어야 하는데서도 비롯된다.
현재 KAL측이 보유하고 있는 비행기는 모두42대. 이중 화물기인 747기 4대를 뺀 38대로 국내외선을 돌려가며 운항하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중동등은 주로 747점보기 10대와 DC-10기 5대등 15대가 맡고 있다. 다시 말해서 15대의 주력기가 주로 17개국 28개 도시를 힘겹게 커버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고를 겪어오면서 대한항공측은 그동안 보유댓수를 꾸준히 늘려오기는 했으나 많은 항로를 개설해 외국항로들과 경쟁을 벌이기에는 아직 보유대수가 부족하다는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보유댓수 부족때문에 점보기와 DC-10기의 경우, 한 노선의 운항을 끝내고 다른 노선에 투입되는 사이 정비시간이 2∼3시간에 불과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점보기는 각각 내구연한이 다른 4백50만개의 부품으로 돼있어 이를 일일이 점검해야 할 별도의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착지에서 충분한 정비와 점검을 하지않고 다른 기착지로 가고, 그곳에서 다시 숨돌릴 사이도 없이 또 뛰어야 하는것이 KAL여객기들의 숨가쁜 여정이다.
실제로 ▲지난76년8월 5명의 승무원이 숨진 테헤란공항 화물기 추락사고 ▲79년7월 2백36명이 탄 DC-10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기내 기압유지장치 고장을 일으켜 승객등 19명이 질식했던 사고 ▲80년6월 나리따공항 비상착륙사고 ▲80년8월 하와이∼동경상공에서의 회항사고 ▲81년9월 마닐라공항에서 공항 울타리를 부수고 밖으로 돌진하는 바람에 승객12명이 부상한 사고등이 모두 정비불량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사고의 정확한 원인을 밝히는 선례도 이뤄져야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바로는 비행기의 기계적인 결함으로 일어난 사고일수록 원인이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사고원인은 정확히 가려져야 하고 문제점은 반드시 시정돼야한다.
그것은 국내 유일의 민간항공이 신뢰감있는 세계적인 항공사로 자라기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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