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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옴부즈맨 칼럼

정치인 얼굴은 이제 그만 감동 주는 사진을 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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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실 깨알 같은 글씨로 빽빽이 채워진 신문을 읽는 것보다는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우리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자축하는 파리의 어떤 연인들의 키스 사진에서 느끼는 평화의 기쁨이나 베트남전쟁 당시 길거리 즉석 총살 사진이 던져주는 전쟁의 잔혹함은 그 어떤 보도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한 주 동안 중앙일보에 실렸던 사진들을 되돌아보면, 아마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사진은 가뭄으로 떼죽음을 당한 아마존 호수의 물고기들을 헤치며 배를 저어가는 어부의 뒷모습을 찍은 외신사진(10월 20일자)이었던 것 같다. 지구에 닥친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의 심각함과 희망을 잃어버린 어부의 뒷모습이 절묘하게 오버랩된 사진이었다. 또 야스쿠니신사 문양을 배경으로 잔뜩 목에 힘을 준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거만하게 걸어나오는 사진(10월 18일자)에서도 경직된 한.일관계와 되살아나는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을 느낄 수 있었고, 시골 노인들이 보건소 앞에서 독감예방 백신을 맞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서 기다리는 사진(10월 18일자)도 우리 사회에 몰아친 조류독감 공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 사진이었다. 이런 보도사진들이야말로 사실상 독자들에게 천 마디의 말보다 더 강렬하게 우리 사회의 이슈와 문제점을 전달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10월 17일자 2면에서 검찰총장의 사임과 이에 대한 청와대의 대책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이슈의 보도와 함께 청와대 민정수석의 물 마시는 사진을 게재한 것은 최악이었던 것 같다. 그 보도 내용과도 별 관계가 없는 엉뚱한 사진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밑에 "청와대 민정수석이 … 발표에 앞서 물을 마시고 있다"라고 너무도 당연한 사진 설명을 달아 놓은 것도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사진도 분명 중요한 보도 행위의 일부다. 물론 사진기자들이 절묘한 순간을 포착하여 사진으로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신문이 정치인의 얼굴들을 큼지막한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독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그보다는 마음을 움직이는 한 장의 사진을 실어주는 것이 독자의 기대에 맞는 것이라고 본다. 거기에 촌철살인의 기막힌 사진 설명을 함께 붙여준다면 금상첨화이리라.

최정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