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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특채, 지인에겐 무한 대출 … 견제 안 받는 '농어촌 제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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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타락 선거 뒤에는 뿌린 돈을 거두려는 조합장 비리가 이어진다. 지난달 29일 전남 나주시 문예회관에서 열린 ‘공정선거 발대식’에서 참가자들이 부정선거 행태를 깨뜨리자는 의미로 송판을 격파하고 있다. 다음 달 11일에는 전국 농·수·축협과 산림조합장 1328명을 한꺼번에 뽑는 첫 동시선거가 치러진다. [프리랜서 오종찬]

# 경기도 S농협 K조합장(55)은 지인 한 명에게 85억1000만원을 대출해줬다. 1인당 8억원까지인 대출 한도를 열 배 가까이 초과했다. 실제 대출자는 한 명인데 대리인을 내세워 여럿이 돈을 빌리는 것처럼 꾸몄다. K조합장은 이를 알면서도 눈감아줬다. 2006년의 일이었다. 결국 10억4400만원을 돌려받지 못했으나 부정 대출은 그냥 넘어갔고 K조합장은 2009년 3선이 됐다. 이 조합장은 2010년 다른 지인에게 11억원을 빌려주면서 담보를 제대로 잡지 않아 5억7700만원의 손실을 봤다. K조합장은 “개인당 대출 한도가 있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100억원 담보를 잡았는데 경매에서 제값을 못 받아 손실이 생겼다”고 했다.

 # K씨(24)는 2013년 11월 경북 A농협에 취직했다. 아버지(59)가 조합장인 농협이다. 아버지 추천서를 받아 농협대학에 입학했고 여느 농협대 졸업자들처럼 필기시험 없이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채용됐다. 채용에는 단독 응시했다. K씨는 입사 한 달 뒤 군대에 갔다. 아버지인 K조합장은 “고교 성적이 괜찮아 농협대학 추천장을 쓰라고 주변에서 적극 권했고 졸업 후 추천장을 써준 농협에 취직하는 관례에 따라 일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부정 대출에 때론 비자금 조성, 그리고 자녀 특채 의혹까지. ‘제왕적 지역 유지’라 불리는 농협·수협·축협·산림조합 조합장들과 관련해선 각종 비위가 끊이지 않는다.

 비리로 지역 농협이 휘청거리게 만든 조합장도 있다. 전남 H농협 Y조합장(67)은 2010년부터 최근까지 묵은쌀을 섞은 뒤 햅쌀로 속여 대형마트에 납품하고 조합 돈 85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달 11일 항소심에서는 징역 2년이 선고됐다. H농협은 묵은쌀을 섞은 게 들통 나는 바람에 대형마트 납품이 끊겼고 농협중앙회로부터 받던 한 해 120억원의 지원금도 못 받게 됐다.

 조합장 비리가 판치는 이유는 견제 세력이 없어서다. 조합장을 감시해야 할 이사·감사들은 회계자료를 분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익명을 원한 경남 농협의 현직 감사는 “이사와 감사를 대의원회에서 뽑지만 조합장 영향력이 막강해 사실상 조합장이 정하는 거나 다름없다”며 “그 때문에 이사·감사를 연임하려면 입바른 소리 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심복인 비리 임원을 승진시킨 조합장도 있다. 충남 S축협 J조합장(66)은 L전무(55)와 함께 속칭 ‘카드깡’을 통해 비자금 6000만원을 만들었다가 2013년 8월 각각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J조합장은 선고 넉 달 뒤 L씨를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시켰다.

 경기도 S농협은 극히 이례적으로 감사가 조합장 비위를 찾아냈다. 조합장이 대출 한도를 열 배 가까이 넘어 지인 한 명에게 85억여원을 대출해 준 내용이다. 이 조합에선 적발 직후 다른 파문이 일었다. 농협중앙회가 조합장에 대해 3개월 자격정지를 내렸는데 이사회가 “자격정지를 1개월로 줄여 달라”고 요청한 것처럼 조합장이 서류를 위조해 농협중앙회에 청원했다는 논란이다. 이사들은 “조합장 요청으로 징계 재심 청구를 논의하긴 했으나 ‘자격정지 1개월’ 같은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며 “조합장이 서류를 꾸며 중앙회에 제출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K조합장은 “서류를 위조하려면 가벼운 견책 같은 것으로 하지 1개월 자격정지로 바꿨겠느냐”고 말했다.

 자녀 특채 의혹이 불거진 농협·축협 등도 적지 않다. 국회 농림축산식품위원회 소속 박민수(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농협중앙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2014년 사이에 농협·축협 조합장의 자녀 81명이 필기시험을 치르지 않고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입사했다. 이 중 15명은 강원도 N농협 등 부모와 같은 농협에서 일한다. 나머지는 대부분 인근 조합에 입사했다. 필기시험을 거쳐 입사한 자녀까지 포함하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조합장과 임원 자녀 202명이 농·축협에 채용됐다. 경남 N농협 P조합장(54)의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농협에 정규직으로 입사한 뒤 군대에 갔고 군 복무를 하는 동안에도 기본급의 70%를 받았다.

 경남 창원시 동읍농협의 김순재(51) 조합장은 “조합장이 비리를 저지르면 조합의 재산이 축나고 자신의 자녀를 취업시키면 일반 조합원 자녀들이 취업 기회를 뺏긴다”며 “오는 3월 선거에서 깨끗한 조합장을 뽑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위성욱(팀장)·최경호·신진호·임명수·김윤호·김기환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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