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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비박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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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유승민 의원(오른쪽)이 2일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84표를 얻어 65표에 그친 이주영 의원을 누르고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유 원내대표는 당선 소감에서 “앞으로 고쳐 나갈 것이 많을 것”이라며 “변화와 혁신을 얘기했는데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와 긴밀하게 진정한 소통을 하겠다”고 밝혔다. 왼쪽은 신임 원유철 정책위의장. [김상선 기자]

역사는 반복된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5월 6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비주류 황우여 의원이 친이계 안경률 의원을 꺾었다. 이변이었다. 경선 직전 당의 강세지역인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에서 패하자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위기감을 느낀 수도권 초·재선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2일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비박계의 지지를 받은 유승민 의원이 당선된 건 당의 헤게모니가 4년 만에 친박계에서 비박계로 이동한 ‘사건’이다. 유 의원은 149표 중 84표를 얻어 친박계가 민 이주영(65표) 의원을 19표 차로 눌렀다.

 유 신임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다수 의원들이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 추락을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한다”며 “대통령과 청와대·장관들도 이제 더 민심과 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말했다. 여의도(당)의 목소리를 높이겠다고 한 유 원내대표의 당선은 여권 내 권력구도의 틀을 뒤흔들고 있다.

 그는 청와대 인적 개편·소폭 개각과 관련, “국민 눈높이를 충분히 감안한 수준의 과감한 인적 쇄신이 됐으면 좋겠다. 국민들의 요구가 굉장히 강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쇄신 인사를 하라는 압박인 셈이다. 정부의 정책 기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선 과정에서 그는 “증세 없는 복지 기조는 바꿀 필요가 있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청와대의 ‘금기어’인 개헌에 대해서도 이날 “정치인이 개헌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토론하는 거야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원내대표 체제를 만든 의원들의 뜻도 청와대로선 부담이다. 유 의원은 지난달 초만 해도 이주영 의원에게 세에서 밀렸지만 연말정산 파문 등으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역전승을 거뒀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에 등 돌린 지역구 민심에 충격 받은 초·재선 의원들이 안정보다는 변화를 선택한 결과”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7월 김무성 대표 체제 등장에 이어 이번에 원내 지도부까지 비박계로 포진함에 따라 청와대와 독립된 목소리를 장전하게 됐다.

김무성-유승민 체제는 당 주도의 당·청 관계를 추구하겠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새누리당과의 소통에 더 신경 쓰지 않으면 국정 곳곳에서 파열음이 날 소지가 다분하다. 새누리당 내부의 역학 관계도 복잡해졌다. 4년 전엔 친이계의 대안으로 ‘박근혜’라는 중심축이 있었지만, 지금의 비박계는 그렇지 못하다. 증세·복지 등 정책 이슈는 물론 오픈 프라이머리나 개헌·선거구제 등 민감한 정치 현안에서 당 지도부가 조정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자칫 노무현 정부 후반기의 열린우리당 같은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글=김정하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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