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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회사에서 꿀 먹은 벙어리 된 30대 남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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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장애의 하나인 ‘선택적 함구증’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신입사원) 지난해부터 직장 생활을 시작한 새내기 회사원입니다. 미혼인 30대 초반의 남성이고요. 제 고민은 전화를 받을 때면 말문이 막혀 버린다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전화벨이 울리면 잘 받아야 하는데 말문이 턱 막히는 증세들이 어느 순간부터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냥 말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6개월 정도 된 것 같은데 전화만 받으면 ‘감사합니다’ 등의 말이 나오지 않아 머뭇거리게 됩니다. 유명하다는 언어장애 치료시설에 가 봤는데 가서는 말을 잘 하니 발음도 좋고 문제 없다면 오지 않아도 될 거라 합니다. 저는 정말 심각한데 말이죠. 정신과나 신경계 쪽으로 가봐야 하는 걸까요.

(왠지 말 잘할 것 같은 윤 교수) 오늘 사연처럼 언어 발달이 정상으로 이루어져 평소에는 말을 잘하는데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서만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선택적 함구증’이라 합다. 선택적 함구증의 진단 기준은 다른 상황에서는 말을 하면서 특정한 상황에서 말을 시작하지 못하거나 언어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로 인해 교육적·직업적 성취나 사회적 의사 소통에 불편이 있는 경우에 선택적 함구증이란 진단을 내리게 됩니다.

 선택적 함구증은 소아 청소년기에 주로 나타나기 때문에 과거에는 소아 청소년의 문제로 분류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개정된 진단 분류에서는 불안 장애의 하나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어른이 되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다른 불안 장애와 함께 진단될 때가 많아서입니다. 이 증세에는 사회 불안 장애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극도의 수줍음, 사회적으로 당황스러운 상황에 대한 두려움, 불안과 완벽에 대한 집착 등 불안 관련 특성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죠.

 6개월 정도 지속되고 있다면 혼자 해결하기에는 버거우시라 생각됩니다. 정신의학 전문가를 찾아 도움 받으실 것을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 경우 전문가들은 행동치료를 하게 됩니다. 사연 주신 분의 경우 전화벨과 불안, 그리고 언어 기능 저항의 잘못된 연결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합니다. 편한 시간에 더 즐겁게 말을 하는 훈련을 하면서, 전화가 울리는 상황에서도 그 느낌이 유지되도록 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불안을 낮추는 약물치료를 함께 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지나친 성취욕 언어 기능 떨어뜨려

그렇군요, 불안 때문에 말문이 막혔다니 속상해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이런 불안이 지나친 성취욕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제 머릿속은 ‘항상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란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현재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동시에 회계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번 낙방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자 친구랑 얼마 전에 헤어진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여자 친구는 이제 나이가 되었으니 현실과 타협해서 직장 생활에 전념하는 것이 좋게다며 충고하는데, 저는 그럴 수 없다며 회계사 시험준비를 계속 하겠다고 우기다 갈등이 커져 헤어졌습니다. 저는 시험에 합격하고 싶고 이를 통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제 능력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목표를 갖고 있거든요. 명성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포기할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다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결국 너무 외롭고 초라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자아실현의 욕구와 타인과 관계를 위한 욕구, 어떤 선택을 해야 행복할까요

우선 욕구는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의 욕구는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죠. 억지로 누르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다 내 인생의 어느 순간에 화산 폭발처럼 터져 버립니다. 사고가 커지는 것이죠. 성취의 욕구와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는 분리돼 있지 않습니다. 나를 멋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성취의 욕구에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관계의 욕구가 가득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인도에 혼자 있는데 하루하루 패션에 신경 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취에 대한 지나친 욕구보다 자신을 너무 혹독하게 대하시는 게 더 본질적으로 고민할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관계의 시작은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자신을 잘 사랑해주지 못한 상황에서는 타인과의 따사로운 관계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성공을 위해서도 혹독하게 자신을 채찍질 하는 것만으로는 효율이 오히려 떨어져 버릴 수 있습니다. 이미 지난친 성취욕이 불안을 만들고 언어 기능마저 얼어 붙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성공의 에너지는 나에 대한 사랑과 이를 기반으로 주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 용솟음칩니다.

불안감,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법

결국 성공에 대한 집착이 불안을 만들고, 이것이 말문을 막히게 하고, 나와 주변 사람과의 관계도 망치게 하고 있네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 마음 속에 항상 불안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불안이 강하게 찾아 올 때면 마음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나는 할 수 있다’ 다짐하며 마인드 트레이닝을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음식을 잘 먹지도 못하고 불안이 더 강하게 찾아 오는 경우도 있어 힘듭니다. 불안이란 녀석,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불안이란 녀석은 관심 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불안이란 감정에 무관심해지려고 하면 불안 신호를 더 올려버립니다. ‘이래도 나한테 무관심할 거냐’고 떼를 쓰는 거죠. 불안이란 감정에 우리가 주로 쓰는 대처법이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에너지가 충분할 때는 내가 힘으로 불안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힘으로만 불안을 조정하다 보면 에너지가 고갈되어 점차 불안을 조정하기 힘들어집니다. 불안도 내 억누르는 힘에 점점 저항이 생겨 웬만한 힘으로 누르지 않고는 꿈쩍도 하지 않기 시작합니다. 더욱이 현재 상황이 스트레스가 많아 마음이 지쳐 있는 상황이라면 불안을 힘으로만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럴 때는 새로운 마음 다스리기 훈련이 필요합니다. 한 가지 소개하자면 불안이란 녀석에는 ‘씨름의 되치기’ 기술이 효과적입니다. 불안이란 녀석에 힘으로 맞서 씨름판에 무릎 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달려오는 불안의 힘을 역이용해 제풀에 넘어지게 하는 것이죠. 불안 조절을 위한 되치기 기술, 어떻게 연습하면 좋을까요.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생각의 3분의 2가 부정적인 생각, 걱정인데요. 걱정이나 불안들과 하나하나 힘으로 싸우다 보면 ‘전쟁’하다 인생이 끝나 버리죠. 힘으로만 밀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 무심하게 친구처럼 함께 보내는 전략도 구사해야 합니다.

 먼저 내 뇌를 네모난 방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방의 사면은 뻥 뚫린 것으로 가장합니다. 걱정거리라는 부정적인 생각은 불안한 감정과 하나가 되어 돌아다니죠. 내 뇌 안에서 생기기도 하고 바깥에서 훅 들어오기도 합니다. 우리는 불안한 걱정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도록 훈련되어 있어 그 걱정거리를 붙잡아서 해결하려 합니다. 씨름으로 치면 힘으로 자빠트리려는 것이죠.

 그러나 그러지 말고 그냥 걱정과 불안이 내 뇌의 방 안을 돌아다니고 때론 들락날락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걱정이 나를 밀치려고 할 때 쓱 되쳐서 뒤로 통과시켜버리는 것이죠. 이러다 보면 걱정과 불안이 분리되는 효과가 일어나는데요. 불안은 내가 반응을 해야 커지는데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재미가 없어지죠. 불안이 떨어져버린 걱정은 오래가지 못하고 사라지게 됩니다. 마음의 되치기 기술을 기르려면 내 마음을 관찰하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내 마음에 곧장 행동하지 않고 그 마음을 영화 보듯, 마음이 무어라 이야기하나 봐주는 것입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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