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방학이용 아르바이트를 마치고(학생좌담)|"땀 많이 흘렸지만 …값진 사회경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여름방학을 이용, 많은 대학생들이 학비와 책값· 용돈 등을 마련하기 의해 건축현장이나 동사무소·열차판매원과 엘리베이터 걸로 일하며 비지땀을 흘렸다.
이들은 한결같이 비록 학과공부는 다소 소홀했지만 그이상의 값진 사회경험을 쌓아 보람있는 방학이 이였다고 입을 모았다. 각각 다른 분야에서 경험했던 아르바이트 학생들의 좌담을 통해 그들이 본 사회와 그들의 고민을 알아본다.
조=등·하교가 아닌 출·퇴근을 하다보니 어느새 여름방학도 거의 끝나가는군요. 지나고 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지만 유난히 무더웠던 이 여름을 남들보다 몇 배 더 많은 땀을 흘렸다는데 뿌듯하기도 합니다. 먼저 각자의 근로내용을 소개하기로 하죠. 저는 건축현장에서 기사보조로 일을 했습니다. 건축학과 생인 저로서는 돈벌이 외에 현장실습의 효과도 있어 좋았읍니다.
오=저는 은행건물에서 엘리베이터 걸로 근무했어요. 17층 상자속에 갇힌채 오르내리는 단순노동이었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 방학중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생활의 리듬을 지킬 수 있었던 점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봐요.
전=KBS에서 이산가족찾기 컴퓨터명단을 교정하는 일을 했어요.
제 손을 거쳐간 이름들이 상봉하는 장면을 볼 때는 무척 기뻤어요. 하루8시간 근무에 7천원씩 보름간 10여만원을 벌었어요. 등록금에 보탤 생각입니다.
이=특급열차 칸을 누비며 닥치는 대로 팔았어요. 호도과자·도시락· 아이스크림콘· 주간지 등을 한아름씩 안고 처음엔「콘 사세요」라는 말이 안나오고 승객들 얼굴 쳐다보기도 쑥스러워 물건만 든 채 그냥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왔다갔다만 했어요.
박=누구보다도 좋은 경험을 얻으신 것 같군요. 저는 조철호씨와 마찬가지로 건축현장 기사보조로 일했습니다. 바로 여의도의 「만남의 광장」 신축현장에 있었는데 노무감독서부터 사무 노무 심부름 청소에 이르기까지 시키는 대로 다했어요. 당초 계약은 상오8시부터 하오6시까지 10시간근무였는데 급한 공사 탓에 상오7시부터 밤11시까지 근무할 때가 많았죠. 첫날 7시까지 출근하라는 걸 1분 늦었더니 현장소장님이 막 야단을 쳐요.
그래서 계약조건을 내세워 대들었더니 당장 그만 두라는 거예요. 기가 막힙디다.
김=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 등·초본을 비롯해 제증명 발급을 도와줬어요. 알고 보니 조그만 동사무소에서 하는 일이 너무나 많더군요.
조=모두들 좋은 경험을 한 것 같군요. 이번 기회를 통해 배운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을 텐데….
박=두 가지 측면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먼저 전공과 관련해 학교에서 미학적·예술적 측면을 강조하는 건축설계에만 치중하는데 건축이란 설계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됐어요. 설계 못지 않게 시공단계가 중요하고 그에 따른 노무관리도 무척 힘든 부분중의 하나더군요.
노무자는 노무자대로 보다 편하게 시간만 때우려하고 관리자는 또 권위만 내세우려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마찰이 일어나곤해요.
10∼20층의 철골 위를 곡예 하듯 다니는 위험을 무릅써야하는가 하면 하루 6천7백10원의 저임의 노무자도 있어요. 많은 계층이 있고 계층간 불협화음도 느낄 수 있었읍니다.
전=비록 글자 교정이라는 단순노동이었지만 글자 하나가 틀리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못 만나는 엄청난 비극을 빚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어요.
이=매일 열차시간에 맞춰야 되기 때문에 시간관념을 배웠어요. 또 만원 특급열차 속을 지나다니다 보면 통로에 서있는 승객들로부터 짜증 섞인 불평을 많이 들었어요. 기성판매원들은 툭하면 싸움을 벌이곤 하더군요.
김=많은 계층이 있더라는 말이 있었는데 저도 빈부의 격차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돼 놀랐읍니다.
몇백만원의 재산세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단돈 5천원 제때 내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상호 조화가 아쉬웠읍니다.
또 민원인중엔 자기의 통·반을 모르거나 가구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점에서 이웃간 단절이 심각하다는 것도 알게됐읍니다.
오=학교 안에서의 생활은 나만을 위한 개인중심이었는데 이번에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둔 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어요. 대인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행동양식도 보다 능동적이 돼 좋았읍니다.
조=오양은 방학중 집을 빠져 나오려는 구실로 아르바이트한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웃음)
오=솔직히 그런 점도 조금은 있었어요.
조=건축공사장엔 아직도 일본식 용어가 많이 쓰이고 있더군요. 마치 일본식용어를 많이 알아야 그만큼 능숙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식될 정도였어요. 하루빨리 고쳐야할 사항이죠.다른 분들도 사회에 대해 부탁하고 싶은 말이 많을 텐데….
이=서로를 이해하고 웃음 있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했으면 합니다. 또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질서 지키기에도 더 노력해야겠어요. 올림픽 등을 앞두고 열차서비스도 많이 개선돼야 겠고요. 특급엔 식수나 세면장시설이 없어요. 쓰레기봉지를 나눠주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더군요.
김=웃음이 없는 건 동사무소도 마찬가지였어요. 직원들은 너무 사무적이고 딱딱한 표정이고 민원인들 역시 자기이익만을 주장하고 있었어요. 낡은 청사도 바꿨음 좋겠고. 공무원들의 사명의식은 비교적 투철했던 것 같았읍니다.
박=소장·과장·계장·노무감독등 똑같은 사람이면서도 계급에 따라 그만큼의 권위의식에 젖어있는 것이 우습게도 보였어요. 하의상달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과연 발전이 있을까 의심도 가지게 됐고. 공기단축·공사비절감을 위해 무리하게 야간작업을 강행하는것도 눈에 거슬렸어요.
전=학생들 중에는 등록금 마련을 위해 부직이 꼭 필요한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과거에는 가정교사가 허용돼 해결됐지만 요즘엔 일자리 구하기가 극히 힘든 실정이에요. 그나마 단순노동에 불과하거나 교통정리처럼 힘들고 위험한, 어찌보면 실효성 없는 직종이 대부분이고. 학생신분으로 능률도 있고 시간도 적당한 아르바이트 업종이 많이 개발 됐으면해요.
조=절실한 얘기를 하셨습니다. 덧붙여 학생이라고 과잉보호해줄 필요도 없고 학생들 역시 봐 주려니 하고 기댈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