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후 처음 열린 항해도 풍어제|인천 화수부두서…학자·학생들도 모여 성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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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일 이른아침, 인천시 화수부두. 한낮의 복더위를 예고하는 여름태양이 일찍부터 기승을 부리나 모처럼 벌어지는 한판의 굿을 보기위해 모여든 사람들. 제1회 해서지방 (황해도) 풍어제가 열리는 현장이다. 부둣가에 마련된 굿청에는 지화를 피워 장식한 봉죽기·서리화가 화려하게 솟아있고 각종 무신도 명도·장해발이 정연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뒤로 늘어선 50여척의 배위에는 서낭기·장군기등 형형색색의 뱃기들이 아침바라을 타고 물결을 이루어 장관이었다.
풍어제는 둘로 나뉘어 이틀간 진행됐다. 마을굿인 「대동굿」과 개인굿인 「배연신굿」. 대동굿은 황해도해서지역, 특히 옹진군의 뱃사람들이 풍어로 배불리 먹을수 있기를 기원하며 온마을이 한바탕 놀던 축제. 남북분단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대동굿이라서 특히 관심을 모았다. 배연신굿은 이지방에서 배를 부리는 사람이 풍어와 집안의 재수를 위해 벌이는 굿이었다.
2일 시작된 대동굿은 새벽4시반에 올린 당제로부터 시작됐다. 무당과 소염(제관)이 굿청으로부터 1km쯤 떨어진 화도진 언덕에 임시로 마련된 당에 올라 유교식 제사를 올렸다.
바로 무속과 유교의 접합된 대목이다.
본격적인 굿거리는 상오8시쯤부터 시작됐다. 하늘을 가르는 새납소리와 흥겨운 배치기 노래로 분위기를 돋우면서 굿청주위는 삽시간에 인파를 이루었다.
이 동네주민뿐 아니라 서울등 각지에서 달려온 수백명의 구경꾼에다 굿에 관심있는 수심명의 학자와 대학생들까지 모여들어 성장을 이루었다.
먼저 당산맞이굿이 시작됐다.
당의 신들을 모셔오기 위해 굿청을 출발, 당집을 향하는 길엔 풍어를 상징하는 봉죽기·서리화가 앞장섰다. 그뒤를 50여 뱃기들과 풍물들이 뒤따랐다.
이어서 이날의 주무인 김금학씨(53), 조무인 유정화(60) 신소저(53) 양병렬 (53) 장순애(57) 김경란(27)씨등 이날의 굿을 주재하는 무당들과 마을사람들이 뒤따랐다. 이번 해서지방풍어제엔 황해도출신 기능보유자 20여명이 참가했다.
서낭 산신 장군신등 모든신을 몽당 굿청에 모셔놓음으로써 굿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이 대동굿에서 특히 우러러 모시는 신은 임경업장군신.
『우리는 임장군을 잘 모셔야 고기를 많이 잡습니다. 임장군은 연평도에서 양식이 멀어졌을때 바닷물이 빠져나가는곳에 엄나무를 갖다쳐서 석어(조기)를 잡아먹었다고 해요. 임장군은 바로 조기잡이의 시조지요.』
고향이 옹진으로 작년까지도 고기잡이에 나셨다는 이마을주민 견세창옹(71)은 이날따라 고향에서 벌이던 대동굿에대한 향수로 상기돼있었다.
『고향에서도 줄곧 이런 굿판에서 놀았어요. 1 4후퇴때 내려온 이래 오늘에서야 이렇게 굿을 보니 자꾸 고향생각이 납니다. 모든게 이제 많이 시들었어요.
연평도 조기잡이 시대도 지났어요. 우린 이제 임장군을 모시고 조기잡으려 동지나해까지 갑니다.』 이날 마을의 재수를 보는점굿, 집집을 축원하는 세경돌이, 굿청에서의 굿을 허가받는 문잡아드림으로 계속된대동굿은 23거리 전과정을 하루에 마칠 예정이었으나 대감놀이굿까지 16거리를 마쳤을때 이미 밤10시가 넘어 나머지를 다음날로 미루지 않을수 없었다. 이날 특히 인기를 모은 굿은 당산맞이굿을 비롯해서 생돼지를 잡고칼춤이 등장하는 생타살군웅굿.
굿청에 진열된 뱃기를 자기배에 갖다다는 「뱃기내림」에선 예로부터 뱃기를 가장먼저 단배가 재수좋아 고기를 많이잡는다하여 그순서 때문에 다퉈왔는데, 이번엔 굿전날에 경관임회하에 순번을 추첨함으로써 이 어려움을 해결했다고.
이번 풍어제가 이곳에서 우연히 이뤄진것은 아니다.
현재 인천에는 30여만명의 황해도 실향민이 살고있다고 한다. 그동안 굿 자체를 금지해 위축돼있던 사람들도 이번에 문예진흥원 화수항어민회등에서 지원하고 황해도청이 주관하니 크게 자신감을 살리는듯했다. 주최는 해서지방풍어제보존회 (회장김금화).
황해도굿은 강압적요소가 강해 서사성보다는 주술성을 바탕으로한 유희성이 돋보인다고 황루시씨(이대강사)는 설명했다.
한편 인멸·변모해가는 향토축제를 민족축제로 육성정착시킬것을 목적으로 지난해 발족한 「향토축제협의회」에선 이번 풍어제를 남이장군당제 (서울·준비중) 와 함께 올해 발굴조사 대상의 하나로 잡고 이날 조사작업에나섰다.
민속분야(김태곤·경희대) 신앙분야(장주근·경기대) 연극분야(이상일·성균관대) 무용분야(임학선·이화여대) 음악분야(한만영·서울대) 사회분야(유도진·경희대)등 모두 6개분야로 나눠 현지에서 진행된 이날 조사에선 특히 대동굿이 갖는 향토축제로서의 가능성을 살펴보는것.
이번 조사결과를 토대로 8일에 모여 종합토론을 갖는다고 밝힌 김태곤교수는 『다소의 변질에도 불구하고 축제성은 살릴수있으나 「자발적정착」이 문제』라고 지적했다.<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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