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은행을잡아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은행을 잡아라』-.
금년 기업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의 참여 러시다.

<20여년만이 문열려>
은행은 50년대에 한번 민영화되었다가 5·16혁명으로 전부 정부에 환수되었는데 이번 20여년만에 다시 문이 열린것이다.
지난 20년동안 은행에의 기업참여는 터부였다.
재벌이 금융을 지배하면 은행이 사금고화한다는 우려에서 은행주를 많이 못갖게했다.
대기업측에서 보면 은행은 무척 매력적인 대상이다.
항상 자금이 달리는 우리 형편에서 은행은 수지맞는 장사일뿐 아니라 비상시의 돈줄로도 활용할수있다.
그동안 은행소유가 불가능하니 단자·종합금융·신용금융·지방은·보험회사등으로 갈증을 대신 풀어왔다.
그러다가 작년 금융자율화방침으로 시은 민영화방침이 결정되면서 대기업들이 너도 나도 달려들었고 이것이 금년에 피크를 이룬것이다.
이제 기업그룹에 있어 은행은 종합상사와 마찬가지로 필수적인것이 되어버렸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정부에 많은 두뇌를 공급했고 보수성이 짙었던 금융계는 행정권의 비대와 함께 무기력 증세로 악성을 허물어뜨린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관록을 앞세운 거물 행장들은 관주도경제체제아래서 부적격인물로 밀려났으며 대신 우등생들과 관료들이 주로 포스트를 점령했다.
그것이 이번엔 은행소유가 기업으로 넘어가면서 기업의 영향력을 받게되었다.
아직 대기업들이 수주권행사엔 매우 조심하고 있으나 소유주의 영향력을 무시할수는 없다.
아직은 정부와 소유주 양쪽의 눈치를 다 보아야한다.
이른바 금융계라는게 형성되지 못하고있다는 것이다.
지난 몇년동안 은행의 공신력이나 사회적 지위는 많이 펼어쳤다.
어찌 보면 금융계수난의 시대라 볼수있다.
2, 3년을 주기로 일어나는 금융사고는 해를 거듭할수록 대형화하는 추세를 보여왔다.
이에따른 인사파동도 사상 최대규모를 경신했다.
지난 10년동안의 경우만보아도 그렇다.
박영복사건, 한독맥주 부정대출사건, 율산사건, 이·장부부 어음사기사건등이 그것이다.

<종합상사처럼 필수적>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인사파동도 사상 최대규모라는 기록을 경신해왔으며 인사에 대한 정부의입김도 그만큼 드세어졌다.
금융계의 텃세가 아예 무시되고 관치성 책임경영체제가 강화되는등 격심한 지각변동이 일어났으며 전혀 다른 산맥이 형성되었다가 꺼지곤 했다.
사실상 경제정책의 전환기에는 금융인들이 많이 속죄양이 되었다.
정부가 마련한 금융경책에 틈이 생기면 특정기업이 이를 악용, 문제를 일으켰다.
새상이 별집쑤셔놓은듯 문제가 확산되면 그 기업과 연결된 금융인들은 목이 열개라도 배겨내지 못했다.
작년 어음사기사건이 할퀴고 간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그러나 금융사 측면에서 보면 이 사건은 한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큰 획을 그어 놓았다.

<이·장사건이 전기돼>
정부가 시중은행을 모두 민영화하고 금융자율화를 부르짖는가 하면 단자회사 및 상호신용금고등 제2금융권의 설립 자유화를 들고나온것도 모두 어음사건 이후의일이다.
금융기관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대기업들이 이때를 놓칠세라 동분서주했다.
대기업이 은행·단자·종합금융·보험·증권등 각 금융기관에 출자, 떳떳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것도 새로 나타난 풍속도다.
금융의 새 판도에서 빠지면 행세할수 없는 형편이어서 대기업들이 더욱 왕성한 참여의욕을 보였다.
어음사건으로 한창 어수선할 때 미국측과 합작인 한미은행과 재일교포들이 세운 신한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작년에 1개, 금년에 4개 시은이 민영화되었다.
은행을 새로 만들거나 민영화하면 참여할수 있는 사람은 뻔하다.
소위 전통적인 금융인도 없고 대중자본주의도 뿌리 내리지못한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외엔 은행주식을 많이 살수 없다.
또 일반기업들은 엄두를 못낸다.

<대주주, 재계서열 비슷>
결국 은행주식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과점될수밖에 없고 신설은행이나 민영화은행이나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기업들로 포진되었던 것이다.
금년으로 은행의 1단계 영토분할은 끝났다고 볼수있다.
정부도 한 은행을 2, 3개그룹이 나누어 소유토록 유도했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우리나라 은행뿐 아니라 증권·보험·신용금고등 금융권도 큰기업의 영향권아래 있다.
그렇게 될수밖에 없는 여건이라 볼수도 있다.
우리나라 금감을 지배하는 대주주명단은 재계의 서열랭킹과 별다르지 않은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