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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군점곡면사촌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경북의성군점곡면사촌동. 안동김씨일문이 5백여년동안 혈맥을 이어온 마을. 이끼오른 기와, 나지막한 토담, 쐐기풀 돋아나는 좁은 골목길 풍경이 고향의 아늑함을 느끼게한다.
팔향조는 고려말 도평의공김구정의 아들 김자첨 (감목관). 그는 고려가 망하자 안동에서 조용히 이마을로 숨어들어 초야에 뭍혀살았다.
마을입구 대곡천 주변에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등을심고 가꾸며 욕심없이 살았다.
당시 그가 심은 나무가 지금은 사촌동을 아늑하게 감싸주는 방풍림이 되어 무성한 숲을 이룬다. 마을 전체 1백50호, 7백여명이 몽땅 그의 후손들. 조선조에는 그의 후손에서 대과13명,소과28명등 총41명의 문과급제자를 내어 명가의 전통을 이어 빛난다.
김광수는 이마을이 배출한유명한 시인이요 학자. 연산군15년. 성균관유생으로 공부하던 그는 연산의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입신의 뜻을 버리고 귀향, 청빈한 학자로서 여생을 마쳤다.남산기슭에 지붕을 드리운「영귀정」은 그가 후학을 양성하며 금풍매월했던 정자다.
조선선조조의 명재상 유성용은 그의 외손자가된다.
일제침략의 마수가 이땅을 서서히 침식하던 1896년, 국내각처에서 의병운동이 불꽃처럼 번지자 사촌동 김씨들은 분연히 항일의 대열에 나섰다.
안동지역의병장 김상종, 선봉장 김수담, 관향장 김수협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들중 김수담과 김수협은 옥산전투에서 같은날 전사했다.
주민들의 주소득원은 예나 다름 없이 농사. 최근에는 사과·담배·배추등을 재배, 가구당연평균 4백2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
『전에는 사과 카면 (하면) 대구사과를 제일로 안쳐줬나. 헌데 그것도 옛말이라. 점곡사과가 대구사과 뺨친다 이기라. 맛도 좋고 빛깔도 곱고…』
은근히 사과자랑을 늘어놓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김서방님네 얼굴모습이 한사람같게 닮았다. 그래서『왜그러냐』고 물었더니『한 할아버지 자손이어서 그렇다』며 다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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