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파장 놀랐나 … 건보료 '무임승차' 개편 백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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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28일 보육시설 아동학대 관련 긴급 현안보고를 위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다. 문 장관이 이기일 보육정책과장과 함께 답변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38년 만에 마련된 건강보험료 부과 방식 개선안이 발표 하루 전날 백지화됐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28일 “올해 안에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만들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2013년 7월 각계 전문가들을 모아 꾸린 부과체계 개선기획단(단장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의 개선안 발표(29일 예정)를 하루 앞두고서다. 문 장관은 이날 “(개선안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다. 세부담이 늘어난다든지 하면 솔직히 불만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연말정산 파동이 이어지자 아예 내년으로 미룬 것이다. 서울대 김진현 간호학과 교수는 “내년에 총선, 2017년 대선이 이어지기 때문에 현 정권 내에서는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140대 국정과제의 하나다.

 현재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는 근로 소득에만, 지역가입자는 소득과 재산·자동차를 합산해 건보료를 부과한다. 이 때문에 지역가입자의 경우 실직해 소득이 거의 없는데도 집이나 자동차가 있다는 이유로 건보료를 과하게 부담해왔다. 또 소득이 많더라도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보료를 내지 않는 ‘무임승차자’가 적지 않았다. 기획단이 만든 개선안은 건보료 부과 방식을 재산에서 소득 중심으로 바꿔 지역가입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개선안이 물 건너가면 현행 건보 부과 체계의 모순은 그대로 남게 된다.

 기획단은 일곱 가지 모형을 제시했는데 어떤 안을 채택하더라도 고소득 직장인의 부담이 늘어나게 돼 있다. 문 장관은 28일 기자간담회에서 “건보료 개선으로 부담이 주는 사람이 있지만 늘어나는 계층이 있어 이들도 불만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기자간담회에선 “기획단 방안대로라면 우호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증세 논란 때문”이라고 속내를 보였다.

 고소득 직장인이란 근로소득 외 임대·사업·금융 등의 종합소득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오피스텔을 갖고 있거나 치킨집 등을 부업으로 하는 경우인데 2011년 기준으로 217만 명이다. 이 중 종합소득이 연 7200만원이 넘는 3만2000명만 초과 금액의 약 3%를 별도 건보료로 낸다. 이 기준을 종합소득 2000만원 이상으로 낮추면 22만7000명이 연 1800억~2700억원을 새로 내야 한다. 고소득 피부양자의 부담도 늘어난다. 현재 연금소득·금융소득이 각각 4000만원이 안 되면 피부양자로 얹혀 무임승차한다. 만약 피부양자 기준을 2000만원 이하로 낮추면 19만3000명이 별도로 건보료(연간 3869억원)를 내야 한다. 개선안이 시행되면 고소득 봉급자와 고소득 피부양자가 건보료를 더 내야 한다.

 이번 개선안 발표 연기에는 지역가입자의 낮은 소득파악률(63%, 2012년 기준)도 한몫했다. 과거보다 올라가긴 했지만 여전히 직장인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연구위원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다. 연말정산 논란으로 정부가 곤욕을 치르고 있으니 피해 가려고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 김 교수는 “정치적으로 부담되면 논의를 공개해 사회적 합의를 거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신성식·이에스더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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