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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법 규제 … 규제… 초고층 건축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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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왜 한국에는 지붕이 뾰족한 초고층 건물이 없을까. 건축과 관련한 규제 때문이다. 현행 건축법 시행령에 따르면 11층 이상의 건물(주거용 제외) 옥상에는 반드시 헬리콥터 이착륙장(헬리포트)을 만들어야 한다. 군사적인 이유로 옥상에 대공포를 설치해야 하는 곳도 있다. 옥상이 평평한 건물을 지어야 하니 첨탑형 초고층은 설 곳이 없다. 전문가들은 70층 이상 고층에서는 바람이 강해 헬리콥터 이착륙이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뉴욕시는 1977년 헬리콥터 충돌 사고 이후 고층 건물 군에서는 헬리콥터 운행을 사실상 금지했다. 미국과 일본은 헬리포트 설치를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최근 서울 제2롯데월드와 상암DMC, 일산 킨텍스타워, 부산 해운대 수영만호텔, 인천 송도타운 등 초고층 건물 신축 계획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규제가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건축법은 엘리베이터를 건물 면적에 비례해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건물 면적이 600~900평을 초과할 때마다 엘리베이터를 한 대씩 추가 설치하도록 돼 있다. 초고층의 '초고속' 엘리베이터 성능은 인정하지 않고 면적만 따진다.

주차장 규정은 교통난을 부채질한다. 주차장법에 따라 연면적이 클수록 더 넓은 주차장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100층짜리 초고층이라면 지하주차장만 10층 이상 지어야 한다. 그래서 초고층이 들어선다면 교통체증부터 걱정한다. 미국 시카고의 초고층 시어스타워는 150대, 일본 신주쿠파크는 823대의 주차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법에 따라 주차장을 설치하면 시어스타워는 3400대, 신주쿠파크는 2340대의 공간을 둬야 한다. 현행법은 주변 도로 등 도시기반시설, 대중교통과의 연계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화재에 대비한 규정도 허술한 편이다. 외국 초고층은 대개 불이 났을 때 피난할 곳(피난층)을 중간층에 배치한다. 미국은 지상층을 가장 안전한 피난층으로 인정하면서도 건물 안 대피 장소를 설치토록 하고 있다. 250m가 넘는 중국의 초고층은 15층마다 대피 장소를 둔다. 초고층이 많은 홍콩에서는 20~25층마다 대피층을 설치한다. 사다리가 닿지 않는 20층 이상의 고층에서 땅까지 내려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피난층은 신속한 피난이 어려운 노약자.장애인의 1차적 대피 장소이자 소방관의 구조 활동을 위한 베이스캠프다. 화재가 위.아래층으로 확산하는 것도 차단한다. 하지만 한국 건축법은 '직접 지상에 통하는 출입구가 있는 층'(대개 1층)만 피난층으로 인정한다.

◆ 법.제도 정비 시급=건설교통부는 초고층에 관한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한다. 그러나 2007년 말 건축학회의 용역 결과가 나온 뒤 정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때까지 짓는 주상복합 등 초고층에는 현행 규정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신성우(한국초고층건축포럼 의장) 한양대 교수는 "초고층 건물 계획이 줄을 잇는 만큼 하루속히 법과 제도를 정비해 재난 방지 기능, 친환경 거주성을 제대로 갖춘 건물이 들어서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고층에 대한 규제를 따로 만들고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홍근 서울대 교수는 "대형 구조물이나 초고층 건물에 대해 강제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인증기관인 '건축센터'가 개별적으로 검토하는 일본의 사례도 참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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