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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허기진 눈망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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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말라위의 카무주 공항을 떠나는 마음은 착잡했다. 17일간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케냐의 카쿠마 난민촌, 말라위를 거쳤다. '사하라 사막 이남'으로 분류되는 빈국이거나, 비슷한 지역이다. 본지와 한국 국제협력단(KOICA)이 펼치는 공동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굶고, 병들고, 지친, 가난한 이들을 많이 만났다. 콧물 흐르는 아이의 마른 뺨을 비볐고, 폐렴 치료를 못 받아 콜록거리는 아이의 앓는 몸도 안았다. 몇 백원이 없어 고름 꽉 찬 귀를 방치하는 꼬마를 위해 치료비도 건넸다. 아이들의 앙상한 팔목과 반드럽고 따스한 검은 피부의 느낌이 여전히 손에 남아 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는 인구의 30%가 빈곤에 잠겨 있다. 500원 월세를 못 내 쫓겨날 처지인 이들, 쓰레기 더미에서 쇳조각을 주워, 먹다 남은 음식으로 만든 '꿀꿀이죽'을 사먹는 이들도 있다.

황무지의 카쿠마 난민촌은 또 어떤가. 남.북이 기독교.이슬람교로 갈려 싸우길 수십 년. 이를 피해 나온 3만 수단 난민이 미래 없는 나날을 보낸다. 유엔의 지원으로 먹고, 잘 수는 있지만 캠프 밖으론 못 나온다. 그런 난민촌에, 수수깡 움막에 사는 원주민 투르카나족이 먹을 것을 찾아 매달린다. 배는 채워도 자유 없는 난민과, 의미 없는 자유를 쥐고 배를 주리는 투르카나족의 대비는 고통스럽다.

말라위는 바짝 말라 가고 있다. 3년 한발로 남부 지역에선 아이들이 죽어 간다. 먹을 것이 넘치는 21세기엔 기이한 광경이지만, 세계 일곱째 빈국인 이 나라는 어찌해 볼 여력이 없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나라들의 처지는 비슷하다. 소말리아.시에라리온.니제르 등등. 1인당 국민총소득(GNI) 500달러 밑에서 허덕인다. 5세 미만 사망률이 시에라리온은 전 세계 1위, 니제르는 2위다. 아이들이 죽는데 어른은 온전하겠으며 나라의 미래는 있겠나.

아시아.남미 국가도 포함되지만 주로 아프리카 빈국들을 위해 유니세프.세계식량계획.적십자사가 나서고, 수많은 NGO가 활동한다. 그리고 유엔은 2000년 9월 189개국 정상회의에서 '밀레니엄 선언문'을 채택해 2015년까지 절대 빈곤 퇴치 등 8개 항목을 달성키로 했다. 그게 MDG다. MDG는 국가들이 내는 공적개발원조(ODA)로 꾸린다.

OECD의 개발원조기구(DAC) 회원 22개국은 GNI의 0.25%를 ODA로 낸다. 우리나라는 0.06%다. 노르웨이는 1인당 한국의 57배를, 룩셈부르크는 60배를 낸다. 그 나라의 1인당 GNI는 우리의 각각 3.4배, 3.76배다. OECD 회원국인 한국은 꽤 인색하다.

한국은 그 ODA에서도 2000~2003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6%, 2004년 7%만 지원했다. 휴머니즘 아닌, 경제 협력을 노리고 아시아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말라위엔 7만달러어치 업무기자재만 보냈을 뿐이다. 좀 민망하다. 그런저런 이유로 ODA 체질 개선 요구가 높다.

13일 열린 ODA 심포지엄에서 아시아재단 한국지부의 에드워드 리드 대표는 이렇게 발제를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 조사차 홀로 사는 농촌 여성의 초라한 집을 찾았다.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음식이었던 계란을 대접해줬다." 그는 물었다. 그 나라가 어디인가. 한국이었다. 미래고 뭐고 없던 우리에게 국제사회는 6.25 이후 203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했다.

강냉이죽도 못 먹어 바짝 마른 아이들의 허기진 눈망울이 다시 떠오른다. 도움이 필요한 눈길이다. 하루를 힘겹게 넘기는 지구촌 가난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조만간 전해드릴 것을 약속한다.

안성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