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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정원을 되살린다 |사적지정된 광한루와 소쇄원 복원 5천여평의 광한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조선시대의 대표적 정원인 남원 광한누원과 담양 소쇄원(소쇄원)이 20일 사적으로 지정됐다.
두 정원은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역사적 기록이 확실해 본래의 정원모습을 완전히 되찾을수 있다.
조선조정원으로서 사적으로 지정된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86년까지는 완전복원 할 예정이다.
○…남원 광한누는이미 보물제28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었는데 광한누앞의 원지 및 무지개다리인 오작교가 있는곳은 역사적 기록이 남아있고 우리나라의 대표적 누원으로서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있다.
기록에 따르면 광한누는 원래 황희가 광통소누를 세웠고 세종16년(1434년)남원부사 민여공이 이를 크게 고쳤으며 세종26년(1444년)정린지가 누에 올라 원을 상찬하며 광한누라 이름붙였다고 한다.
그후 명종17년(l562년)전라도관찰사 정철등이 누를 개죽하고 물을 끌어들여 평호를 만들고 은하수를 상징케 했다.
못 가운데에 삼신도를 만들어 한섬에는 연죽, 또 한 섬에는 백일홍을 심고 나머지 한 섬에는 연정을 지었으며 못속에는 연을 가득심고 오작교를 놓았다.
선조30년 (1597년) 정유재란때 광한누가 불탔으나 인조4년(1626년) 개축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제 4만9천9백여평방m(l만5천1백여평)넓이에 광한누원이 복원되면 84년 개통되는 남마∼대구간 88고속도로및 지리산을 축으로 한 남원관광단지 개발과 연결돼 전북의 관광명소로 부각될 전망이다.
○…소쇄원은 조선중종때 양산보가 가꾼 정원으로서 그의 호 소쇄원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기운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을 가진 이 정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별서 (별서)정원으로서 보존상태가 양호할뿐만아니라 1755년에 간행된 「소쇄원도」가 현존하고있어 원형의 복원보존이 가능하다.
이 정원을 가꾼 양산보(1503∼l557)는 조광조의 문하인으로서 17살에 등과, 15l9년 기묘사화때 조광조가 유배되자 하향해 은거하며 소쇄원을 이룩했다.
전남담양군남면지각리에 있는 이정원은 양산보가 송순·기대승·고경명·정철등과 교류하던 곳으로 넓이는 4천여평방m (1천2백여평).
소쇄원은 정자·화목·수천·기기 (물레방아)·괴석·가산·동물 (물고기) 등 정원의 모든 요소를 갖춘 조선조의 전통정원이다.
양산보가 목판으로 남겨놓은 정원설계도, 즉「소쇄원도]를 따라가보면 물레방아가 있던 곳을 사이로 두개의 지당이 있고 오는 손님을 봉에 비유한 대봉대가 있다.
이어 누워있는 소나무와 살구·잣나무로 둘러싸인 애양단마당이 전정으로 꾸며져 있고 이는 다시 내정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광풍각으로부터 가산을 지나 다시 계곡 물가와 바위에 이어지는 계정을 이루고 있다.
「소쇄원도」 엔 양산보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하서 김연후가 이 정원을 상찬하는 「소쇄원사십팔영」 을 새겨 남기고 있다.
소쇄원은 호남고속도로 담양인터체인지에서 약20분거리(광주 무등산북쪽) 로, 근처에 정철의 유적인 송강정등이 자리잡고있어 앞으로 새로운 관광권을 형성할것 같다.<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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