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다행히도 어제 저녁부터 오늘 낮까지는 아군측이 장거리포를 쏘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어젯밤에 다시금 악몽에 시달렸다. 총격전 소리가 몇분 간격으로 계속 울리는 바람에 자정 이후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김대위는 통영에 있는 우리아이들에게 탄약을 수송해줘야 한다면서 아침 일찍 떠났다. 「헤스」소령은 그들로부터 지상지원을 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통영으로 날아갔으나 그는 지원해줄 무기가 어느 곳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헤스」소령은 할 수 없이 「킨」장군에게 그지역 책임자가 누구냐고 문의해 보았으나 「킨」장군은 그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사실조차 모르고있었다. 이때 김대위가 「킨」장군에게 자신은 1만명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키라는 명령을 부산으로부터 받았노라고 했다. 도대체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육·해군 손발 안맞아>
8월 21일.
대통령은 상오 10시에 진해를 떠났다. 「무초」대사가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진해로 와서 대통령을 모시고 대구로 떠난 것이다.
대통령이 대구공항에 도착해보니 5, 6명의 장관들이 공항에 나와 있었다.
그는「워커」장군을 보고 해군이 지금 통영지역을 소탕중인데 육군과의 협조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워커」장군은 『육·해군간에 협조가 없어 보이는게 아니라 아예 협조가 없다』고 대답했다. 육군과 해군이 각자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 얘기를 듣고있던 신성모국방장관은 그에게 한국에는 오직 하나의 사령부가 있을 뿐이며, 해군이 독단적으로 어떤 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혼란의 원인이 어디 있었는가는 곧 밝혀졌다. 즉 부산에 있던 미해군사령부가 독자적인 작전명령을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에게 내려 이 명령을 수행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해군의 김대령은 육군측이 통영·거제도지역은 해군쪽 책임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당시의 우리 해군은 장비가 아주 허술했다. 극히 일부 해군만이 무기를 갖고있는 암담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해군은 부산 바로 앞에 있는 거제도도 방위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였다.
육군은 이러한 실정을 도외시한 채 해상봉쇄를 하면 공산군이 침투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만하고 남해안 전체를 비워놓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틈타 공산군은 소형보트를 타고 모든 도서에 침투하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통영과 거제도를 장악하려고 기도하고 있다. 누가 이들을 격퇴할 것인가?
거제도는 제주도 다음으로 크고 부유한 섬이 아닌가? 그곳엔 이미 10만명의 피난민이 모여 있었다.공산군이 거제도를 장악한다 해도 피난민 때문에 함부로 폭격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육군과 해군은 앞으로 서로 긴밀히 협조하기로 약속했다.
우리해군은 영국군과 함께 인천상륙에 필요한 덕적도를 포격한 끝에 그 섬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우리는 내일 배를 타고 마산으로 갈 계획이다.

<타실인사말라 당부>
8월 22일 상오 8시45분.
우리는 소형 초계정을 타고 마산으로 떠났다. 부두에는 「노블」참사관과 UP통신기자「잭·제임즈」가 나와 있었다. 이들은 마산에 있는 「킨」장군에게 배속돼 있는 사람들이었다.
상오 9시15분, 우리가 탄 초계정이 마산에 도착하니 이응준장군이 부둣가에 나와 었었다. 이장군은 대통령을 「킨」장군이 있는 사령부로 안내했다.
미군사령부를 잠깐 둘러본 대통령은 곧바로 한국군사령부를 방문했다.
양쪽 사령부 방문을 마친 대통령은 총영에서 온 고속초계정을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 도착하니 하오 2시였다.
대통령은 부산에서 「무초」대사와 각부장관들을 만난 후 도지정관저로 갔다. 부산에서 잠을 자려니 진해에서 밤낮으로 들었던 장거리 포소리가 오히려 듣고 싶은 생각이 났다.
대통령은 방에 내각이나 국회가 징병에 관한 법을 통과시킨 일이 없으니 징병의 시행이 있을 수 없다는 성명서를 작성했다.
8월23일.
오늘 아침 일찍 대통령은 징병에 관한 자신의 성명을 보도하지 않은 군의 검열책임자를 불러 이 문제를 물었다. 옥신각신 끝에 대통령의 성명내용이 발표되었다.,
징병이 없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성명이 나가자 그 반응은 대단히 좋았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거 지원병으로 자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매우 어려운 노릇이었다. 국방부는 3일마다 5천명의 병력을 미군쪽에 공급해야 할 입장이었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대로 5개 사단을 조직하기를 원하고 있었으나 그럴 병력이 전혀 없었다. 필요한 시간 내에 필요한 병력을 차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오 쯤 돼서 대통령이 어젯밤에 불럿던 조병왕내무장관과 신성모국방장관이 왔다.
조내무는 경찰의 현황에 관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조내무에게 경찰간부들을 함부로 해고하고 장관의 친척이나 친구들을 기용하는 행위를 중지하라고 말했다. 그와 같은 것은 모든 상황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신국방장관은 이제부터는 지원병제도를 통해 모병을 하는데 동의했다.
신국방은 또 미군사고문단(KMAG)장교들과 일을 하는데 애로사항이 많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오늘 현재 미군사고문단 요원은 약 5백명에 달하고 있었으나 한국인들에게 동정적이거나 전투경험을 갖고있는 요원은 거의 없었다.
신국방의 얘기로는 미군사고문단요원들의 대부분은 야전의 경험이 없고 파티나 즐기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8월 26일.
해군 초계정을 타고 하오 2시5분에 부산해군 부두를 떠났다. 손원일해군참모총장이 우리와 함께 승선했다. ?해의 전용부두에 도착해 보니 미구축함 한 척이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이 구축함은 하오 6시쯤 마산쪽으로 떠났다. 그쪽 해안에서 진동을 포격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참 휼륭한 군인이야>
이날 오후 대통령은 부두에 내려가 작은 목선을 타고 나가서 낚시를 했다. 커다란 고기들이 계속 잡혀 대통령은 1시간 동안 42마리나 낚아 올렸다.
한참 고기를 낚는 중 전방 3백m 정도되는 산 밑에서 『그쪽은 출입금지구역이니 어서 나가시오』하고 누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마 이곳을 경비하는 해병인듯 하였다.
그때 목선에는 김장흥총경·이선영·정사와 해군 장교가 함께 타고 있었는데 대통령은 『여기가 출입금지구역이라면 어서 나가야지』하고 낚시를 그만 두고 되돌아왔다.
별장으로 올라온 대통령은 통제부사령관인 김성삼대령을 불렀다. 사령관은 이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불안한 표정이었으나 이윽고 대통령이그 해병을 칭찬하며 1계급 특진을 명하니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약 1시간 후 김대령은 이 해법을 대동하고 왔다. 대통령도 그 해병을 반기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참으로 훌륭한 군인이야! 이렇게 애국적인 군인이 많이 있어야해』하며 치하하였다. 그 병사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오늘 밤은 밤새도록 포격소리가 들렸다. 이제 우리는 대포소리와 구축함에서 발사하는 함포소리를 구별할 수가 있 정도가 됐다. 미군들은 마산으로 가는 길목인 서북산을 장악했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