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칼럼]의미깊은 작품은 재미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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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지난 몇 주간 대학로는 축제로 분주했다. 베케트와 이오네스코의 계보를 이으며 침묵의 언어로 현대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예리하게 포착한 해롤드 핀터,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핀터 페스티벌'이 막을 내렸고, 셰익스피어를 대중에게 접근시키려는 '셰익스피어 난장'이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치러졌다. 또한 해외와 국내 우수작들을 선별하여 올린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16일 대단원을 장식했다. 특히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오른 작품 중에는 신제국주의라 불리는 자본주의의 실체를 노골적으로 비난한 '맥도날드의 광대 로널드 이야기', 이성 중심 사회의 폭력적인 이면을 어린아이의 눈으로 포착한 '광대들의 학교',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과 탐욕을 보여준 '서쪽부대', 집단이기주의와 편견으로 한 사람을 도깨비로 만들어버린 '빨간 도깨비' 등 현대를 날카롭게 주시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공연 분야의 종사자로서 참 바쁘면서도 행복한 몇 주였다. 그러나 의미 있는 문화 행사가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공연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관련학과 교수이거나 학생, 공연관계자, 배우 아니면 숙제를 하기 위해 연신 무언가를 끄적이는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문화적 토대가 빈약한 것이 근본 원인이겠지만 이를 타개할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주머니 속의 돌'은 대안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일인 다역으로 연극적인 재미를 주면서도 산업사회의 발전으로 인해 주변으로 밀려나 파괴되는 지역 공동체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그려냈다. '앙드레 류의 콘서트' 역시 고급스런 문화로만 여겨졌던 클래식 음악을 대중들의 기호에 맞게 편곡해 클래식의 매력을 쉽게 전달해주었다. 예술은 다양해야 한다. 아방가르드와 같이 난해하고 형식적인 미를 강조하는 작품부터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작품까지 다층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관객들이 말초적인 감각에 의존하고 오락적인 공연에만 치중하는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작품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우리나라 국민의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8분이라고 한다. 신문지상에 연일 오르는 정치.경제의 위기 못지않게 문화의 위기 역시 심각한 상태다. 이 가을, 일상의 무게에 짓눌린 가슴을 훌훌 털어내고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공연 한 편을 만끽하면 어떨까? 마음이 살찌는 가을이 되도록.

-더뮤지컬 박병성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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