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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지도 않은 리베이트를 소명하라고?"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연초부터 의약품 리베이트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보건당국에서 불법 의약품 리베이트에 연루된 의료인을 대상으로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에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반면 의사들은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제약업계는 영업현장에 불똥이 튈까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강경한 복지부 의료기관 처방실적 분석

26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복지부는 이르면 상반기 내 리베이트를 주고받은 의료인에 대한 행정처분을 확정해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이들 의료인을 대상으로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발송하고 있다.


이번 행정처분은 당초 제약사가 수사기관에 의약품 리베이트로 60여 차례나 적발됐는데도 불구하고, 복지부에서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에 대한 행정처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서 시작됐다.

다시 말해 범죄일람표에 이름이 올라간 의료인 1만 여명 모두 행정처분 대상인 셈이다. 복지부는 이들을 ▲100만원 미만 ▲100만원 이상 300만원 미만 ▲300만원 이상 등으로 분류했다. 행정처분 기준은 300만원 이상 금품 및 물품을 받은 의료인이다. 법원에서 290만원 상당의 접대를 받은 의사에 대해 면허정지 처분을 내린 것이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를 근거로 했다. 이들 300만원 이상을 받은 의료인 2000여명에게 2개월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100만원 미만을 받은 의료인 1만1000여명을 행정처분 대상에서 제외했고, 100만원 이상 300만원 미만을 받은 의료인 약 3000여명에게 경고조치만 내렸다. 특히 복지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와 공조해 리베이트 전후 의약품 처방실적 등을 분석해 행정처분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행정처벌 대상 의료인을 약 2000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내 의사 면허를 발급받아 활동하고 있는 의료인은 약 10만여 명이다. 복지부 계획대로 행정처분이 이뤄진다면 의사 50명 중 1명은 2개월 동안 병원 문을 닫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들 모두 행정처분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리베이트는 대부분 내부 장부를 통해 입증된다. 제약회사 장부에 기재된 금품이나 물품이 100% 의료인에게 전달됐다고 확신하기 어려워서다. 여기다 리베이트 특성상 영수증을 남기지 않아 결정적으로 리베이트를 주고 받았다는 증거가 힘등상황이다. 또 일부 제약사는 거래처 보호를 위해 장부를 허위로 작성했다고 진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복지부의 입장은 강경하다. 행정처분 대상 의료인들에게는 “제약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료인이 직접 소명하라”고 지시했다. 행정처분 심의위원회에서 의료인들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처분을 면제해주겠다는 것. 하지만 사실상 이들 의료인에 대한 처분을 강행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의사협회는 “정부에서 사실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정처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제약업계 매출 감소 장기화

불똥이 튄 곳은 제약사다. 행정처분 사전통지를 받은 의사들은 ‘언제 어떤 제약사로부터 얼마를 받았다’는 정보를 함께 통보받았다. 당연히 제약사에 대한 반감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60여 건의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된 행정처분이기 때문에 그만큼 연루된 제약사 역사 한 둘이 아니다. 실제 2007년 이후 공정거래위원회 등으로부터 의약품 리베이트로 적발된 제약사만 30여 곳이 넘는다.


이같은 불신은 제약사 매출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 2010년 한미약품은 리베이트쌍벌제 법안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의료계 ‘5적(賊)’으로 분류돼 비난을 샀다. 이같은 비난은 제품 불매 운동으로 확산됐고, 한미약품은 전체 매출 10%가량이 감소하는 현상을 겪기도 했다. 의원급 매출은 30%나 떨어지면서 회사 전체가 극심한 매출 부진에 시달렸다.

동아에스티 역시 한 차례 곤혹을 치뤘다. 2012년말 불거진 리베이트 사건으로 재판을 받으면서다. 이 재판은 의료인이 대규모로 법정에 선 첫 재판이었다. 당시 동아에스티는 리베이트 혐의를 인정하면서 “의약품 리베이트는 의료·제약업계 관행적·구조적 비리”라며 선처를 호소하면서 사실상 리베이트를 인정했다. 파문이 커진 것은 의료계를 연루시킨 것. 이후 의료계에서는 동아에스티 불매운동이 크게 일었고, 동아에스티는 같은 기간 대비 매출이 30% 가량 뚝 떨어졌다.

국내 제약사 영업사원은 “갑자기 자신이 언제 리베이트를 받았냐면서 따지거나 허위사실을 말했다며 소송을 걸겠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경고처분만 받아도 영업사원 출입을 금지시킬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다. 만일 면허정지로 병원 문이라도 닫으면 이들 의료기관과 거래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실제 제약업계 영업 부진은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의약품조사기관 유비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상위 20개 제약사 원외 처방실적은 총 4조 5446억원으로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 확산으로 의약품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한미약품·대웅제약·동아에스티·SK케미칼·화이자·아스트라제네카·글락소스미스클라인·노바티스 등 주요 국내외 제약사 대부분이 매출 부진을 겪고 있다.

지난 2012년 일괄 약가인하 이후 리베이트 규제가 강화되면서 제약업계 실적부진이 장기화되는 모양새다. 이 외에도 리베이트 규제 강화로 영업활동이 극도로 위축된 것도 처방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해 7월부터 1억원 이상 리베이트가 두 번 적발되면 해당 의약품의 건강보험을 중단하는 강력한 처벌 규정을 시행했다. 기존의 리베이트 처벌보다 더 강력한 규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의료계 분위기가 악화된데가 규제까지 강화돼 처방약 시장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며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건강기능식품이나 화장품, 일반의약품에 집중하는 곳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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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기자 byjun3005@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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