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칼럼] 스마트폰은 잊어라

중앙일보

입력

최근 한국에서는 글로벌 고급 사양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데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이 큰 수익을 거둬왔던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 주요 기업들이 생산한 다양한 고급제품들이 쉽게 잊혀져 가고 있다.

최근 오랫만에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내 아파트에 들렀더니 집이 LG 광고의 세트장처럼 변해 있었다. 에어컨, 세탁기와 냉장고 모두 LG 제품이었다. 기술지원팀에서 일하는 한 친구가 나를 찾아왔는데, 그는 최신형 스마트폰인 LG G3 32GB를 휴대하고 있었다. 그 친구가 G3의 여러 기능들을 사용하는 것을 보며 나는 LG나 삼성과 같은 기업들이 이러한 고급사양 기기들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본을 투자했을지 새삼 생각해보게 됐다.

스마트폰 기술과 유비쿼터스 환경은 3G 기술보다 먼저 개발됐다. NTT 도코모를 아는가. 이 일본 통신회사는 1999년 스마트폰 전쟁의 시작을 알렸으며 2001년까지 4000만명의 가입자를 끌어 모았다. ‘i-모드’라는 OS(운영체제)에 기반했는데 그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널리 사용된 스마트폰 OS는 ‘심비안’ 또한 잊혀진 이름이다.

애플이 혁신적인 터치스크린을 장착한 아이폰을 발표한 것은 불과 8년 전인 2007년이었다. 삼성이 2010년 6월에서야 갤럭시S를 처음 내놓았다는 것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이다. 갤럭시 S5가 발표된 것은 지난해 4월이었다. 갤럭시S 시리즈가 매년 한 번씩 새로 출시된 셈이다.

이는 공격적 마케팅이 난무하는 애플과 삼성, LG의 경쟁에서 따라잡고 따라 잡히는 것이 얼마나 쉽고도 빈번한 일인지를 알려준다. 이러한 치열한 마케팅 경쟁의 목적은 새 기능, 혹은 새 업그레이드 내용이 실제로는 별게 아니더라도 마치 대단한 것처럼 보이게 포장하는 데 있다.

하지만 눈부신 기술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그저 사진을 찍거나 문자 혹은 카카오톡과 같은 인스턴트 메시지를 보내는 데 이용한다.

여기서 나는 한가지 비밀을 밝히고자 한다. 지난 3년 간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인터넷이 잘 보급된 한국에서 아이팟 터치 하나만으로 버텨왔다. 주위사람들은 놀라워하기도 하고, 몇몇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보기도 했다. 나는 e메일에 의존하는 것에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또 집과 사무실에는 무선 네트워크가 설치돼 있고 그 사이에서도 와이파이 핫스팟이 많아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 10세 이상의 사람들 중에 거의 ‘유일하게’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나는 이 유명세를 점점 더 즐기고 있다. 솔직히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그 대열에 끼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공포스러운 제도들(불법 보조금, 중고폰 선보상, 위약금, 그리고 단통법까지)에 지레 겁을 먹거나, 너무 많은 선택지(아이폰5에만 21개의 모델이 있다)에 질려 이내 포기하고 만다.

이제는 내게도 스마트폰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쓸모 있게 쓰일 날이 온 것 같다. 그리고 경기가 좋지 않고 소득도 늘어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저렴한 스마트폰을 사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삼성이나 LG와 같이 기술력이 뛰어난 기업들은 향후 고전이 예상되는 고급사양 스마트폰 시장에 계속해서 의지하는 것이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두 기업 모두 새로운 성장동력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스마트홈과 같은 사물인터넷은 기존에 두 기업들이 선전하던 가전 분야와도 잘 연결될 것이다.

이제는 카이로에 있는 집의 온도를 서울에서 아이폰으로 조절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진정한 기술적 진보가 아닌가 싶다.

버틸 피터슨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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