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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의 소곤소곤 연예가] 끼로 뭉친 MC 임성민 "그 만화 덕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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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 가을. 노래 가사처럼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는'요즘 같은 날씨에는 왠지 서점 한 번은 꼭 가 줘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들곤 한다. 특히, 어제 MC 임성민을 만나곤 더더욱. 혹시 그녀의 운명을 바꾼 책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누구나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한 권은 있잖아요. 저는 감명을 넘어 제 운명을 뒤바꾼 책이 있어요. 초등학교 때 부모님 몰래 읽은 만화책 '유리가면'이라고."

나름대로 아나운서 출신인 그녀, 적어도 위인전이나 역사적인 대문호의 작품일 것이란 예상을 훌떡 깨고 등장한 숨어서 본 만화책. 그렇다면 분명 진지한 이유가 있을 터.

"너무너무 엄한 부모님 때문에 장래 직업은 당연히 의사나 선생님을 해야 한다고 제 자신조차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그런데 우연히 친구에게 빌린 '유리가면'이란 만화책을 보는데, 순간 무릎을 치면서 '아, 이것이 정말 내 운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연기에 있어서 선천적인 재능과 후천적 재능을 가진 두 소녀의 열정과 갈등을 그린 만화 '유리가면'을 보며 우리의 어린 성민은 커서 반드시 훌륭한 연기자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유난히 카메라와 조명을 좋아라 하는 그녀의 배우 습성은 유아기부터 이미 나타났다.

"제 두 돌 기념사진은 펑펑 울어서 퉁퉁 부어 있어요. 전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포즈와 표정이 있었죠. 그런데 사진사 아저씨가 자꾸만 평범하고 어색한 포즈를 잡으라고 하니까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막 울고불고…."

시골 외가에라도 가는 날이면 꼬마 임성민은 외삼촌.이모들을 마당 한가운데 불러 모아 놓곤 툇마루에 올라 현란한 공연을 펼쳐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녀의 이 주체할 수 없는 끼는 20여 년 뒤인 1991년도 KBS 14기 공채 탤런트 합격통지서가 증명해 주었다.

"이병헌.노현희.손현주씨가 제 동기였죠. 부모님 반대로 일주일 만에 그만두긴 했지만. 그 후 일단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방송 3사는 물론 각종 신문사 시험에 도전하고 떨어지고를 30번 정도 반복하다가 3년 만에 어렵게 아나운서가 됐어요. 방송 진행도 너무너무 재미있지만 그럼에도 배우로 살고 싶어서 과감히 사표를 썼죠. 언젠가는 '유리가면'의 주인공처럼 목숨을 건 연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바람처럼 그녀는 예고 없이 찾아 올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지금도 수험생 같은 마음으로 연기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니, 배우 임성민을 만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일은 나도 꼭 서점에 가리라. 이번 가을에 만난 책이 내 인생을 바꿔 줄 것만 같은 기대 반 희망 반을 안고서.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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