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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 준비해도 퇴직 후 10년이 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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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3년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 임원이었던 K씨(50).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재취업을 준비할 틈이 없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봐도 취업이 되지 않자 아내와 함께 프랜차이즈 식당을 차렸다. 그러나 딱 10개월 만에 퇴직금을 다 까먹고 접었다. 생계비조차 마련할 길이 없자 가족들 보험까지 다 해약했다. 뒤늦게 직업훈련센터에서 산업기사 자격증을 딴 덕에 겨우 중소기업 생산직 일자리를 얻었다. 퇴직한 지 2년 만이었다. K씨는 “연봉은 전 직장의 절반도 안 되지만 고정 수입이 생긴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대기업 부장이었던 J씨(56)는 퇴직을 1년 앞둔 2012년 말 회사 경력관리센터로부터 재취업 교육 제안을 받았다. 회사를 나가라고 등 떠미는 듯해 내키지 않았지만 교육은 받았다. 이력서도 새 단장하고 면접 요령도 익혔다. 센터는 그의 경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A사를 재취업 대상으로 추천했다. 중소기업이었지만 세계적인 특허 27건을 보유한 탄탄한 회사였다. 이 분야 전문가였던 J씨는 A사의 발전 전략 청사진도 미리 마련했다. J씨와 면접한 A사는 단번에 그를 최고정보책임자(CIO)로 영입했다.

 요즘 두 사람은 모두 “신입사원이 된 기분으로 일하는 보람을 새삼 느낀다”고 말한다. 아직도 구직시장을 헤매는 중장년 퇴직자에 비하면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퇴직 뒤 두 사람의 처지는 천양지차다. K씨는 3년 동안 무직과 창업을 전전하다 퇴직금까지 다 날린 뒤 가까스로 재취업에 성공했다.

이와 달리 J씨는 퇴직 뒤 바로 직장을 얻었다. 연봉도 전 직장보다 올랐고 5~10년 근무까지 보장받았다.

 삼성전자 지세근 경력관리센터장(상무)은 “퇴직 전에 경력 관리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퇴직 후 10년의 운명을 가른다”고 말했다. 아무 대책 없이 회사를 나온 K씨와 달리 J씨는 퇴직 1년 전부터 체계적으로 재취업을 준비했다. J씨가 다닌 회사도 적극 도왔다. 연봉 협상에서 J씨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A사와 협상을 대신해주기도 했다. 전직한 지 2년여가 지난 지금 A사 회장은 “J이사를 뽑은 건 ‘신의 한 수’였다”며 만족해하고 있다.

 소상공인진흥원에 따르면 회사원 10명 중 7명(73.7%)은 이런 형태의 경력 관리 프로그램을 회사가 운영해주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경력 관리 제도를 도입한 회사는 16%에 불과하다. 회사원 대부분이 퇴직 때가 다가오면 심리적 불안(48%)과 전직의 어려움(32%)을 동시에 겪는 이유다. 일본에선 기업 중 78%가 생애 컨설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미국도 74%가 도입했다. 심지어 일본 기업은 입사 이후 나이별로 집 장만, 교육비용 관리와 같은 재테크 비법은 물론 건강 관리, 가정 생활 노하우까지 컨설팅해준다. 숙명여대 김규동(글로벌경영학) 교수는 “꼼꼼하게 자신의 경력을 관리하는 근로자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지만 기업과 정부도 전직 지원 제도에 대한 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반퇴시대엔 할 수만 있다면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게 좋다. 노후를 준비할 기간도 그만큼 늘어난다. 임금이나 근로 시간을 좀 줄이는 임금피크제나 시간선택제 근무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2014년 현재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정년을 연장한 기업은 18%에 불과하다.

특별취재팀=김동호·김기찬 선임기자
박진석·박현영·염지현·최현주·박유미·김은정 기자 hope.bant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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