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름난 어린이집서 학대 … "입소문도 못 믿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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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부평구 N어린이집에서 교사가 어린이를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TV(CCTV) 영상이 공개됐다. 지난달 22일 김모(25·여) 교사는 음료수를 바닥에 흘린 네 살 아이의 얼굴을 주먹으로 쳐 엉덩방아를 찧게 했다(사진 위). 지난 12일에는 한글 공부 도중 색칠을 서툴게 한다며 한 아이는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고(가운데) 또 다른 아이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밀어 넘어뜨렸다(아래).[CCTV 캡처]

어린이집의 엽기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인천시 부평구 N어린이집 4세반 김모(25) 교사가 아이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는 장면이 폐쇄회로TV(CCTV)에 잡혀 또 공개됐다. 피해자는 10여 명이나 된다. 최근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실태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부모들은 “도대체 어떤 어린이집을 믿어야 할지, 뭘 보고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을 늘릴 수 있을까.

인천 송도국제도시 주민과 육아 커뮤니티 회원들이 18일 송도 센트럴파크에서 아동학대 추방 및 보육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4세 아동이 무자비하게 폭행당한 인천 송도 K어린이집과 부평 N어린이집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두 곳 모두 보건복지부의 평가인증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우수한 어린이집이란 인증을 받았다. 또한 두 곳 모두 동네 주민들의 입소문을 탄 곳이다. 인천 부평구청 관계자는 “N어린이집은 130명 정원인데 86명이 입학 대기 중”이라고 말했다. 송도 K어린이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5살 아이를 둔 전업주부 장모(33)씨는 “K어린이집이 엄마들 사이에 좋다는 소문이 많이 나 옆 단지 사람들도 아이를 보내기 위해 몰렸다”고 했다.

 결국 정부가 제공하는 어린이집 관련 공식정보인 평가인증 결과나 전업주부들이 퍼뜨리는 입소문 같은 비공식 정보 모두가 결국 부모들이 안전하게 맡길 곳을 찾고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본지가 최근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한 어린이집 8곳의 사례를 분석했더니 이 가운데 6개가 정부의 평가인증에서 합격한 우수 시설이었다. 두 곳은 평가인증을 받겠다고 신청하지 않은 곳이었다. 평가인증을 받지 않은 곳은 학부모들이 그나마 접할 수 있는 공식적인 정보마저 제공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직장맘이 가장 심각한 정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인천시 연수구 임선숙(29·여·학교 교직원)씨의 사례를 보자. 그는 3월부터 19개월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려 적합한 데를 물색하고 있다. 주변에 아는 동네 엄마가 없고 여기저기 가볼 수도 없어 복지부의 아이사랑보육 포털의 평가인증 정보공시에 의존했다. 임씨는 “정부의 인증 정보라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며 “평가인증 점수가 높고 보육교사 1급이 많은 곳을 골라 대기를 걸어놨다”고 말했다. 그중 하나가 이번에 사건이 발생한 인천 송도 K어린이집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겁을 했다.

 정부의 평가인증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평가항목에 아동학대 분야가 빠져 있는 데 있다. 보육환경, 운영관리, 보육과정, 교사·아동 간 상호작용과 교수법, 영양, 안전 6개 항목을 평가한다. 주로 환경에 집중돼 있다. 그나마 아동학대와 연관성이 있는 항목이 아이와 교사의 소통을 보는 ‘상호작용’ 분야인데 최근 2년간 아동학대가 발생한 5곳은 이 분야에서 90점이 넘는 좋은 점수를 받았다. 실상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부모의 선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평가인증은 약 넉 달이 걸린다. 그러나 방문 평가는 하루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서류 평가다. 서상범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정책국장은 “딱 하루 현장 평가를 나와서 어떻게 어린이집 전반을 평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한 번 통과하면 3년 동안 인증이 유지되는 것도 문제다. 배창경 한국보육교직원 총연합회 공동대표는 “학부모들이 평가인증에 수시로 참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임영주 신구대 유아교육과 겸임교수는 “평가 항목에 교사 인성교육을 얼마나 했는지를 넣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공식적 정보가 믿을 게 못 되니 전업주부들은 인터넷 카페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4, 6세 두 아이를 둔 김미진(32·여·경기도 과천시)씨는 “지역 커뮤니티 카페에 어린이집의 안 좋은 점을 올리려 해도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에 걸릴 수 있어 쉬쉬하면서 쪽지로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에스더·정종훈·신진·최모란 기자 welfar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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