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전후 60년 … 자각하는 재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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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형 인간의 상징이던 일본의 샐러리맨들이 넥타이를 풀어젖히고 창업에 나서고, 정치에 무관심하던 젊은이들은 대거 투표장에 몰려들었다. 입만 열면 '정부가 잘못됐다''회사가 문제'라고 외치던 일본인들이 '국가와 회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경제전문지인 닛케이비즈니스는 최신호에서 "전후 60년이 돼서야 일본인들이 스스로의 손으로 일본이란 국가상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서구식 시스템에 맞지도 않는데 무리하게 맞추려다 보니 "그것으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잡지는 "조만간 새로운 일본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면서 '새로운 나라 만들기를 위한 여섯 가지 제언'을 내놨다.

*** 닛케이비즈니스 '새 일본 위한 6가지 제언'

◆ 기업은 사원들에게 현실을 똑바로 알려라=숨기는 경영은 더 이상 통할 수 없다. 인터넷이나 블로그 때문에 사내의 비밀은 유지될 수 없게 됐다. 숨기고 있다 들키면 조직은 한순간에 붕괴된다.

1993년 성과주의를 채택한 후지쓰의 구로카와 히로아키(黑川博昭) 사장이 지난해 '성과주의 11년의 성적표'를 대내외에 공표한 게 공개 경영의 대표적 사례다. 내용은 이런 식이다. "후지쓰에는 2500명의 부장과 6000명의 과장이 있다. 성과주의가 제대로 되려면 그들 모두 부하를 공평하게 평가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환상이다."

◆ 1차 베이비붐 세대를 수출해라=1947~49년에 태어난 1차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를 해외로 돌려야 한다. 예컨대 중국 상하이(上海) 같은 곳에 말이다. 단카이는 인구만 700만 명으로, 2007~2010년 줄줄이 정년퇴직을 맞는다. 아직 상하이 같은 곳에선 기술력과 경험으로 단련된 단카이 세대가 충분히 현역으로 일할 수 있다.

일본.중국 간 우호에도 도움이 된다. 젊은이들이 낸 돈으로 연금을 받아 쓰고 의료비도 덜 낸다는 차가운 시선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용도폐기된 조국보다 쌍수 들고 환영해 주는 해외를 택하는 것이 방법이다.

◆ 엘리트는 큰 곳에 기대지 말고 도전해라=최근 엘리트들의 벤처 창업은 '한탕 해서 돈을 챙기겠다'는 차원이 아니다. 책임있는 일을 사회 초년병 때부터 하고 싶다는 투지가 깔려 있다. 또 이들을 지원하는 인적.물리적 환경도 갖춰졌다. 회사 내 엘리트 사이에 '큰 회사에서 상사의 귀여움을 받으며 지내는 것만이 안정은 아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배울 것이 없어지면 다음 회사로 옮기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 출세해서 목청을 높여라=자스닥 등 신흥 주식시장이 생겨나 학력.국적에 상관없이 실력으로 출세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계층 간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누구나 출세할 수 있는 여건이 된 만큼 도전의식이 필요하다.

◆ 지방은 정치에 의존하지 말라=국가재정에 기대 지방의 발전을 이루려는 시대는 끝났다. 지방 내 각종 직능단체도 마찬가지다. 기존 질서에 얽매이지 말고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예컨대 일부 지자체 안에서 1년 365일 휴무 없이 치과병원을 열고, 병원을 그룹화하는 것은 대표적 변화다.

◆ 외교.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민초에 귀를 기울여라=민간 차원의 이라크 돕기는 자위대보다 더 큰 외교다. 국제협력기구(JICA)에 들어가 민간 외교를 펼치려는 젊은이들이 모집 정원의 10배가 넘게 몰린다. 이들의 진지한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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