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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정산 '13월의 울화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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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중견기업 부장 김모(49)씨는 15일 연말정산 서류를 이달 말까지 제출하라는 회사 인사팀의 안내를 받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연봉 7500만원인 김씨는 회사 경영성과가 좋지 않아 2년째 급여가 동결돼 있다. 그런데 이날 한국납세자연맹 홈페이지에 들어가 연말정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세금이 생각보다 많이 늘어났다. 김씨는 지난해 신용카드 1600만원, 체크카드 등 700만원, 보장성보험료 100만원, 의료비 260만원, 교육비 300만원, 연금저축 400만원을 각각 지출했다. 전년과 비슷한 규모다. 이를 토대로 산출된 환급액은 지난해보다 60만원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벌이로 중고생 자녀 둘을 키우고 있는 김 부장네에게 연말정산 환급액은 그동안 ‘13월의 월급’ 역할을 해왔다. 사실상 내 주머니 안에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던 환급액이 확 깎이자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소득공제 주요 항목이 세액공제로 전환된 뒤 처음 맞이하는 올해 연말정산(2014년 소득분)을 앞두고 1800만 회사원들의 스트레스가 커지고 있다. 소득공제는 과표를 깎아주는 방식이지만 세액공제는 산출된 세금을 깍아주는 방식이다. 공제율이 산출세액의 12~15%로 낮게 책정된 편이어서 환급액이 줄어들면서 세금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세금이 오를 것이란 점은 널리 알려져 있던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연말정산이 코앞에 닥쳐 시뮬레이션을 해본 근로자들은 생각보다 많은 돈을 토해내게 되는 것을 보고 놀라고 있다.

 정부는 당초 소득세법 개정이 고액 연봉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8000만원 이하라면 세금이 거의 늘지 않고 연봉 3억원 초과 근로자는 865만원가량 늘어난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납세자연맹이 국세통계연보에 나타난 평균적인 납세자를 기준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연봉이 8000만원을 넘지 않아도 2014년분 세금이 1년 전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김씨처럼 자녀 2명을 둔 연봉 7500만원의 외벌이 직장인의 세금은 33만원가량 늘어난다. 크게 세금이 늘어난 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뀌는 항목을 많이 적용받기 때문이다. 김씨의 경우 세법개정 결과 올해 연말정산에서는 과세표준 이전 단계에서 공제되던 의료비·교육비·보장성보험료·기부금이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과세표준이 4914만921원으로 증가했다. 배우자 기본공제를 받지 못하는 맞벌이 부부의 과표는 더욱 증가한다.

 미혼 독신자의 세금 부담도 알려진 것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연봉 7000만원 미혼 직장인은 다른 공제액이 없을 경우 지난해보다 5만5000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추정한 3만원의 배에 달하는 규모다. 세금 증가가 없다던 연봉 2360만원~3800만원 사이인 미혼 직장인도 세금이 늘어날 수 있다. 연봉 3000만원인 미혼 직장인이 본인 기본공제와 4대 보험료 공제만 받는다면 근로소득세가 90만7500원인데, 이는 지난해(73만4250원)보다 17만3250원이 많은 금액이다. 납세자연맹은 “개인의 소득공제 종류와 공제효과에 따라 증세 편차가 클 수 있다”며 “본인 기본공제와 4대 보험료 공제 외에는 다른 공제 요인이 없는 미혼 근로소득자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녀가 많을 수록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것도 직장인들의 울화증을 자극하고 있다.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연봉 5000만원 직장인의 6세 이하 자녀가 한 명이면 올 연말정산 때 세금이 지난해보다 8210원 줄어든다. 그러나 자녀가 두 명이면 15만6790원이 늘고, 자녀가 세 명이면 36만4880원이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납세자연맹은 소득공제에 세액공제로 전환됨에 따른 증세효과는 정부 발표와 달리 ▶자녀가 6세 이하인지 ▶자녀가 몇 명인지 ▶연금저축액과 보장성보험료가 얼마인지 ▶의료비·교육비·기부금공제액수가 얼마인지 등에 따라 편차가 커진다고 분석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올해는 바뀐 세법에 따라 연말정산을 하기 때문에 절세 전략을 잘 짜야 한다”며 “실제로 ‘세금폭탄’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연말정산 서류제출 전에 반드시 연말정산자동계산기를 통해 미리 세금 변동액을 확인해 보고 환급세액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이 많은 회사원들을 우울하게 하고 있지만 세법 개정으로 거둬들이는 세금은 9000억원에 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동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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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액공제 전환 … 1800만 근로자 한숨
연봉 7500만원의 2자녀 외벌이, 세금 60만원 늘어 정부 예상치 2배
자녀 많을수록 세 부담 … 5000만원에 6세 이하 3명, 36만원 더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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