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 김성룡의 사각사각] 탄 놈, 못생긴 놈, 속빈 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요즘 커피 좀 마신다는 사람 사이에서 커피콩을 직접 볶는 ‘홈 로스팅’이 유행입니다. 집에서 커피를 볶은 지 이제 2년이 다 돼갑니다. 가장 원초적인 수망(뚜껑이 달린 일종의 채) 로스팅을 하다 보니 체프(커피콩 껍질)가 날려 베란다가 엉망이 되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계속 홈 로스팅을 하는 이유는 볶은 콩을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선호하는 원두를 구입하기가 쉽고, 갓 볶은 콩으로 내린 신선한 커피를 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홈 로스팅의 장점은 콩 볶는 정도(스테이크에 비유하자면 레어, 미디엄, 웰던)를 조절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로스팅 시간이 짧을수록 커피 고유의 신맛이 많이 나고, 길수록 신맛이 사라지면서 쓴맛이 늘어납니다. 자신의 기호에 맞춰 커피를 볶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선호하는 로스팅은 약간 신맛이 나는 정도입니다.

사진 속 콩들을 ‘결점두’라고 부릅니다. 홈 로스팅의 가장 마지막 과정은 이런 결점두를 골라내는 일입니다. 너무 많이 탄 콩과 못생긴 콩, 속이 빈 콩은 커피 맛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TV에서 “가을 타는구나?”라고 묻는 여자에게 “커피 탑니다~”라고 대답하는 남자를 봅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타서’ 주면 안 되죠. 정성을 담아 ‘내려서’ 줘야합니다. 올 겨울이 가기 전에 핸드드립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달콤, 씁쓸, 떨떠름한 진짜 커피 맛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김성룡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