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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2>제 79화 육사 졸업생들(155)장창국-혁명 성공 후의 8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최고 위원 선출이 끝나자 최고 위원에 들어가지 못한 혁명 주체들에 대한 보직 인사가 단행됐다.
주요 시장은 장성급에서 맡았다. 서울시장에 윤태일 준장, 대구시장에 강?채 준장 (5기), 부산시장에는 당시 부산항만 사령관이던 김현옥 대령(60·3기·진주), 그리고 이밖의 주요 도시는 중령급이 시장으로 임명됐다.
8기생으로는 부산 군수기지 사령부에서 참모장 김용순 준장과 함께 혁명에 가담했던 신용관씨(57·8기·황해 사리원)가 마산시장에, 30사단 작전참모였던 이백일 중령은 수원시장을 맡았다.
육대 교관으로 있으면서 혁명에 참여했던 정문순씨는 최고회의 직속 총무처 차장으로 들어갔다가 문화재 관리국장으로 옮겼으며 육대에서 함께 참여한 윤필용 중령은 최고회의 비서실장이 됐다.
2군사령부에서 후방혁명조직 준비를 했던 8기생 장동운 중령(56·황해)은 주택공사 전신인 대한주택영단 이사장에, 임광섭 중령은 해운공사 사장에, 서상린 중령은 강생회 회장을 맡았다.
또 중앙혁명 조직 요원 중 최고 위원에 끼이지 못했던 8기생 중 최홍순 중령은 대한통운 사장, 안태갑 중령은 감찰위원회 국장, 김재후 중령은 총무처 인사 국장, 이지찬 중령은 전매청장, 김성룡 중령은 중정 제주지부장에 임명됐다.
1군사령부의 8기생 혁명 주체들에게도 자리가 돌아갔다.
조창대 중령은 치안국 정보과장, 박용기·엄병길 중령은 중정 요원으로, 5군단 하사관 교육 대장으로 혁명에 참여한 8기생 박배근 중령(57·신의주)은 감찰위원회 국장에 임명됐다.
혁명 직후의 경찰국장급으로는 6군단 포병대 대장으로 참여한 구자춘 중령이 충남도경 국장, 박영수 중령(7기·전 서울시장)이 강원도경 국장에 임명됐다.
6관구로 혁명 주동자를 체포하러 갔다가 혁명에 가담한 헌병차감 이광선 대령은 서울시경국장에, 당시 헌병감이던 조흥만 준장은 치안국장에 임명됐다.
당시 6관구 경리 참모였던 8기생 방성출 중령은 최고회의 경리국장직을 차지했다.
또 11명의 핵심 멤버 중 한 사람인 신윤창 중령은 수도방위사령부 참모장에 임명됐다.
김동환 중령은 두 차례에 걸쳐 동기생들에 의해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으나 사양하고 주미공사로 나갔다. 김 중령은 영어에 능통해 당시 악화된 대비 외교를 호전시키기 위해 혁명주체로서 직접 외교 일선에 나섰다는 것이다. 김 중령은 1년여 동안 미국에 머무르다가 돌아와 공화당 창당과 더불어 초대 사무 총장이 됐다.
훨씬 후의 일이지만 63년 초 민정이양을 앞두고 대폭 예편은 단행했을 때 8기생 중 이교관으로 나간 사람도 많다.
최영태씨는 주일대표부 참사관, 이택근씨는 캄보디아 총영사, 정군 서명자 11명 가운데 한 사람인 김달훈씨(60·상주)는 주일공사로 나갔다.
당신 이 같은 직책이 부여될 때 혁명 직후에는 주로 당사자들의 희망에 의해 보직이 됐다고 한다.
다만 해운공사·주택영단·대한통운 등 국영기업체장의 경우는 위에서 지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때는 이른바 감투를 놓고 『나는 이곳으로 가겠다』 『저 곳으로 보내 달라』는 청탁이 많았던 반면 『군인이 정치하려고 혁명한 것이 아니라 정군하려고 한 것인데 무슨 감투냐』며 처음부터 거절했던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최고회의·중앙정보부·국영기업체·관계 등에 8기생들이 중책을 맡기 시작한 이 무렵부터 육사 8기생들이 중책을 맡기 시작한 이 무렵부터 육사 8기의 거취에 세인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들이 권력구조의 요소 요소에 박혀 꿈틀거릴 때마다 나라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위세였다고 말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런 위세 속에 가짜 8기생도 적지 않게 나왔다. 『모씨가 나와 같은 육사 8기인데 잇권을 얻어 준다』며 사기 행각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나왔다.
63년 초 민정이양을 앞두고 현역 8기생 대령들이 경찰국장급으로 대거 발탁되기도 했다.
마산시장을 하던 신용관씨가 준장으로 예편하면서 경남도경 국장으로, 고동철씨는 준장으로 예편해 경찰전문학교 부교장으로, 최정환씨는 대령으로 예편해 강원도경 국장으로, 거의영씨는 대령으로 옷을 벗고 충남도경 국장으로 들어갔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8기생 중심의 경찰국장팀을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8기생이 틱히 많았던 곳은 중앙정보부와 경찰, 그리고 통운·한전·농협·조폐공사·주택공사·해운공사 등 국영기업체들이었는데 동기생간에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한 덕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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