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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표현의 자유” vs 이슬람권 “타 종교 비방” … 극과 극 인식이 문명의 충돌 불씨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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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호 04면

‘오리(신문)는 총보다 높이 난다’, 불레트 BuzzFeed News

“오리는 총보다 높이 난다.”

무엇이 파리 테러 불렀나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이후 그려진 한 만평의 내용이다. 여기서 오리(canard)는 프랑스어로 신문을 의미하는 속어다. 만평에선 테러리스트가 하늘을 나는 오리(샤를리 에브도 신문)의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내용이다.

프랑스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라면 어디서나 표현의 자유를 중시한다. 미국의 수정헌법 1조(1791년)는 “언론(speech), 출판(press)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떠한 법도 제정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의 헌법 21조도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국가의 핵심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에서 본 것처럼 표현의 자유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세계와는 종종 정면 충돌해 왔다. 예언자 마호메트에 대한 신성모독을 금기시하는 이슬람권, 그중에서도 극단주의자들과는 유독 큰 갈등과 마찰을 빚어왔다.

‘펜을 향한 테러’, 루벤 오펜하이머

일단 서방권에선 대부분 ‘나도 샤를리’라는 의식에 연대를 표시하는 기류가 강하다. 프랑스뿐 아니라 서방 세계에선 “두려워 말자”며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절대 양보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예언자 마호메트 풍자 만평을 2005년 게재해 논란을 촉발한 덴마크 일간지 율란츠-포스텐은 “파리 테러 사건이 풍자 만평의 정당성을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10년 전 마호메트가 머리에 폭탄 모양의 터번을 두른 모습 등을 묘사한 12편의 만평을 지면에 실었다. 이 때문에 신문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표적이 됐다. 플레밍 로즈 편집장은 이번 파리 테러는 유럽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 누구의 기분도 상하게 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킨다면 신문에는 기사 한 줄도 실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테러로 숨진 샤를리 에브도의 편집장이자 만평가인 스테판 샤르보니에는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우리의 일이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표현의 자유 없이 우리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며 “쥐처럼 사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8일 사설에서 이번 테러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규정했다. 미국에선 최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암살을 그린 소니 픽처스의 영화 ‘인터뷰’가 해킹과 테러 위협으로 상영이 일시 중단되자 표현의 자유 문제가 다시 부각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중대한 도발로 보고 해킹과 위협을 가한 당사자로 지목한 북한에 대해 추가 제재 등 보복 조치했다.

한국신문협회가 9일 ‘테러와 겁박이 언론 활동을 멈출 수는 없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한 것도 같은 취지다. 신문협회는 “테러는 용서할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로 우리는 인류사회와 함께 이를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언론을 상대로 한 테러는 그 방법을 불문하고 전 세계 언론인들과 언론 활동을 겁박하며, ‘표현의 자유’라는 인류보편적 가치를 부정하는 반문명적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엔 동의하면서도 굳이 이슬람권을 노골적으로 자극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비판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샤를리 에브도 등의 풍자만화가 특정 종교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오는 과도한 공격이라는 지적이다.

이슬람권은 이슬람에 대한 서방 언론의 비판과 풍자를 수용하지 않는다.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는 “이슬람을 앞세운 테러리스트들의 행동은 예언자 마호메트에 대한 최대 모욕”이라며 “마호메트를 모욕하는 책과 만평 작가들도 이슬람의 적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영국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글렌 그린월드는 미국 등에서 무슬림의 표현의 자유는 상대적으로 제대로 보호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팔레스타인을 옹호하고 이스라엘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잡혀가는 무슬림들이 많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구현돼 왔다. 독일 등 유럽에선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는 표현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1977년 미국 신나치주의자들이 주민의 절반이 유대인인 일리노이주 스코키 마을에서 반유대주의 시위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주 대법원은 수정헌법 1조에 따라 이를 허용한 바 있다. 2009년 당시 고든 브라운 영국 노동당 정부는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을 ‘파시스트 책’이라고 비난한 네덜란드의 극우 정치인 게르트 빌더스의 입국을 불허했다. 브라운 정부는 “우리는 누구보다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극장에서 종교적·인종적 증오를 선동할 자유는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

한경환 기자 helmu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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