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제가 105만원 금품 받았는데 … 함께 살면 공직자 처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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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부장 판사와 한 집에 살고 있는 처제 B씨가 피고인 측으로부터 105만원 상당의 콘도회원권을 받았다. 누가 처벌받아야 할까.

 상식적으로 돈을 받은 B씨가 처벌받는 게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 8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에 따르면 처벌받는 건 A부장판사다. 단, 처제가 돈을 받았다는 걸 알았을 경우다. 김영란법안은 공직자 가족이 직무관련성 있는 금품을 받았을 때 그 사실을 알았다면 가족이 아니라 공직자 본인이 처벌받도록 규정했다. 법안과 관련해 가장 큰 ‘오해’를 낳고 있는 대목이다. 공직자가 아니라 마치 가족이 처벌받는 것으로 일부 언론이 오보를 해 새정치민주연합 정무위 간사 김기식 의원이 “통과된 법안과 관련해 사실관계가 잘못된 기사가 일부 있다”는 보도자료를 뿌리기도 했다.

 공직자(업무에 공익성이 있는 국·공·사립 교직원, 유치원 교사, 언론사 기자 및 임직원도 포함)가 직무관련성이 없는 돈을 받아도 100만원을 넘으면 형사처벌이 가능하고 100만원 이하로 받아도 한 명에게 연간 300만원 이상을 받으면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게 김영란법안의 골자다.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 가족도 똑같은 원칙을 적용받지만 처벌은 공직자가 받는다. 김영란법안이 현실에 적용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질의응답(Q&A) 형식으로 궁금증을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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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부장판사의 처제가 돈을 받았는데 왜 부장판사가 처벌받나.

 A. 김영란법안의 원안을 낸 국민권익위원회는 “가족이 받았음을 알면서도 반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 본인이 받은 것과 같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경우 처제와 함께 살고 있는 판사가 회원권을 받은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경우는 처벌 대상이다. 김영란법안에는 ‘공직자는 가족이 받을 수 없는 금품을 받은 것을 알게 된 경우 이를 지체 없이 반환하거나 거부의사를 밝혀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몰랐다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 또 민법은 아내의 직계혈족은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에만 가족으로 인정한다. 따라서 처제가 따로 살고 있었다면 이 법안에 따른 처벌은 어렵다.

 Q. 공무원 부부가 있다. 남편의 업무와 관련 있는 업체가 부인에게 90만원대 명품백을 줬다.

 A. 남편이 몰랐다면 남편은 처벌받지 않는다. 부인도 이 건만으로는 처벌받지 않는다. 김영란법안엔 공직자가 직무관련성이 없이 받은 금품이 100만원 이하인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 부인이 같은 사람으로부터 받은 돈이 연간 300만원을 넘으면 형사처벌 대상이다. 남편이 명품백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과태료 대상이다.

 Q. 고교동창인 국립병원 의사, 변호사, 교수, 기자가 골프를 치고 변호사가 계산한다면.

 A. 처벌받을 수 있다. 김영란법안에는 현금 외에도 골프·주류 등의 향응접대를 금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변호사가 골프비용을 지불했을 경우 1인당 금품 수수 금액이 100만원을 초과하면 직무관련성 없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국립대학병원 의사와 대학 교수는 교직원으로 공직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기자도 법안 적용 대상이다. 다만 이들이 ‘친목 모임’임을 주장할 경우 국회 본회의 처리 후 정해지는 시행령 기준에 따라 비용기준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Q. 기자와 국책은행 기업대출 담당 직원이 결혼한다. 업무와 관련 있는 사람이 10만원의 축의금을 낸다면.

 A. 과태료를 물 수 있다. 국책은행인 한국은행·기업은행·산업은행·수출입은행 직원 역시 김영란법상 공직자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 전이라 시행령은 정해져 있진 않다. 하지만 현행 공무원행동강령에는 부조를 1인 5만원까지만 인정한다. 만약 현 수준인 5만원으로 시행령이 정해질 경우 10만원을 받으면 과태료 대상이다. 직무관련이 있든 없든 하객이 100만원을 초과하는 축의금을 내면 형사처벌 대상이다.

 Q. 국회의원이 자신이 소속된 상임위의 유관단체로부터 후원금을 받는다면 불법인가.

 A. 합법이다. 김영란법안에 따르면 정치자금법같이 다른 법령으로 허용되는 금품은 처벌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후원금은 국회법과 정치자금법에 따른다.

이지상·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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