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안 잡힌 3조 마련 과제… 빈곤층 263만 명 사회안전망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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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위 빈곤층 중 상당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마찬가지로 극빈층의 소득밖에 없는데도 자녀 등 부양 의무자가 있다는 이유에서 정부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자녀가 생활비를 한 번도 보내 온 적이 없는 경우에도 정부 보조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이처럼 복지혜택에서 제외돼 있는 차상위 빈곤층은 2003년 현재 263만 명이다.

정부와 여당이 26일 발표한 차상위 빈곤층 종합대책은 복지 대상 계층을 한 단계 끌어올려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차상위 빈곤층이 절대 빈곤층(기초 수급자)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번 대책을 마련했다"면서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돼야 1인당 국민소득 2만, 3만 달러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돈이다. 다른 예산을 줄여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복지대상을 넓히는 과정에서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엉뚱한 사람이 지원받는 고질적 문제점도 여전할 전망이다.

◆ 주요 내용=정부 대책은 의료.주거.고용.자활.교육.보육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했다. 정부는 내년 중 차상위 빈곤층의 18세 미만 아동 8만7000명, 2007년 임산부 1만2000명, 2008년 장애인 6만4000명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또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해 내년 7월부터 차상위 빈곤층 12만 명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인정할 계획이다. 일을 많이 할수록 근로소득세를 깎아 주고 이만큼 소득에 얹어 주는 근로소득지원세제(EITC)를 2007년 시행하기로 했다. 연소득이 1900만~2200만원 이하 저소득층 중 자녀 두 명 이상을 둔 무주택자 15만 가구가 대상이다. 이들은 연간 51만~150만원가량 더 받게 될 전망이다. 정부가 기존 주택 주인과 전세계약을 해서 차상위 빈곤층 등에게 이를 재임대하고, 단신용 주택을 사서 노숙자와 쪽방 거주자에게 임대키로 했다.

2009년까지 차상위 빈곤층의 실업자 직업훈련 대상자를 1000명 늘리고, 집에서 돌볼 수 없는 최중증 지체장애인(뇌병변 장애인 포함)을 위한 무료 시설 169개와 실비 시설 81개를 짓기로 했다.

◆ 문제점=차상위 대책에 필요한 돈은 2009년까지 8조6000억원. 이 중 정부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3조6000억원이 문제다.

정부는 일단 종합부동산세 신설과 담뱃값 인상으로 80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담뱃값 인상을 반대하고 있다. 나머지 2조8000억원은 다른 분야 세출을 줄이거나 새로운 세원을 찾아서 만들어야 한다. 당정은 ▶국방예산을 줄이거나▶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민간투자방식(BTL)으로 전환하며▶공무원 임금 등 행정비용을 줄여 조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국방부가 내놓은 국방개혁안은 2020년까지 683조원이 들어가야 군을 현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국방예산 감축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지원대상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는 데 대한 불신도 여전하다. 최근 기초생활수급자 8만 명이 해외를 왕래했고 수급자 본인과 가족 중 1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갖고 있는 사람이 1009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지는 등 '돈 있는' 수급자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예산을 크게 늘리는 데도 막상 이를 집행할 지방조직은 미흡한 것도 문제다. 정부는 내년 6월까지 읍.면.동 사무소를 주민복지.문화센터로 바꾸고 노동사무소의 직업상담원이나 교육청 직원을 파견받아 시.군.구에 주민생활 지원부서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지방공무원의 반발, 주민 불편 가중 등을 내세워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이 같은 방침을 제대로 따라줄지 불투명하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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