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지 안쓴 당좌수표 부도내도 처벌 못한다|서울지검, 2명 불기소 법무부도 "적법성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거액의 부도를 냈더라도 수표에 발행지를 기재하지 않았다면 형사처벌을 할 수 없게 됐다. 서울지검은 1일 부정수표 단속법에 따른 처리기준을 이같이 바꾸고 11억6천여만원과 1억1천여만원의 거액부도를 낸 회사대표 2명에게 무혐의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검찰의 이같은 결정으로 지금까지 형사처벌을 받았거나 현재 기소되어 재판에 계류중인 부정수표 관계사범의 처리가 주목된다.
또 현재 관행상 당좌수표가 모두 발행지란에 법률적 효과가 없는 회사명칭의 스탬프만 찍힌 채 유통되고 있어 앞으로 당좌수표 유통에 큰 혼란이 예상되고 있다.
서울지검 형사4부 김학재검사는 31일 국동금속대표 최상길씨(52 서용 갈현동 1l0의37)에 대해 부도난 최씨 발행의 수표가 발행지 기재가 없어 현행 수표법상 적법한 수표로 볼 수 없다며 무혐의 불기소결정을 내렸다.
최씨는 서울신탁은행 종로l가 지점과 당좌계정을 개설, 수표를 발행해오다 지난해 9월 1억1천5백만원짜리 1장을 부도내 은행에 의해 고발조치 되자 달아났다가 자수했었다.
최씨가 발행한 수표의 발행지란에는「국동금속주식회사」란 스탬프인이 찍혔고 그 밑의 발행인란에는「대표이사 최상길」이라고 되어있었으나 검찰은 회사이름은 지명이 아니므로 발행지 기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서울지검 형사4부 최연희검사는 31일 11억여원을 부도낸 전 삼진알루미늄(경기도 안양시 안양동 762의5) 대표 박태원씨(51)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무혐의 불기소 처분했다.
박씨는 70년부터 한국외환은행 명동지점과 상업은행 명동지점 및 79년 조흥은행 명동지점 등 3군데와 당좌거래를 해오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1월까지 당좌수표 72장 액면가 11억6천8백46만여원을 부도낸 혐의였다.
박씨가 발행한 수표의 발행지란에도 회사이름의 도장이 찍혀있었다.
이와같은 내용의 사건은 그동안 법원·검찰이 일관되게 유죄로 인정, 처벌해왔으나 민사사건에서는 발행지 기재 없는 수표는 적법성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검찰이 이같이 처벌기준을 바꾼 것은 최근 가계수표의 발행지 기재문제가 말썽이 생긴 후 서울지검이 법무부에『발행지가 기재안된 당좌수표의 적법성여부』를 질의함과 동시에 검사들의 의견을 종합해 결론을 내렸다는 것.
법무부도 이 질의에 대해『발행지가 기재안된 수표는 적법성이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금명간 전국경찰에 이를 시달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법원에서도 소장 법관들 사이에 처벌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 많아 서울형사지법의 경우 지난주 같은 내용의 사건 2건의 선고기일을 지정했다가 경찰의 요청으로 연기해 놓고있다.
한 검찰관계자는 그동안 검사들이 이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인 결과 가능하면 피의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엄격하게 법조문을 해석해야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무혐의 결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법원·검찰의 해석으로 이미 기소된 사건은 검찰이 공소를 취소하거나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보이며 이미 부도를 내고 도주하거나 조사를 받고 있는 수표발행인들 중 상당수가 이에 해당되어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수표법 제l조와 제2조에는『지급지·발행일과 발행지 등 수표요건의 기재가 없는 것은 수표의 효력이 없다』고 규정되어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