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하이, 하이브리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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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모(44) 차장은 새해 기념으로 차를 바꾸기로 결심했지만 차종을 놓고 고민 또 고민이다. 집이 있는 경기도 파주 운정신도시에서 서울역 근처 회사까지 40㎞나 돼 차량 선택의 1번 조건은 연비다. 그래서 눈여겨 본 게 ‘하이브리드(Hybrid) 차량’. ‘혼합’이란 말처럼 가솔린·디젤 같은 기존 엔진에 전기차용 배터리 엔진을 더한 차다. 전기의 힘을 추가로 보태기 때문에 연비가 그만큼 좋다. 하지만 김 차장은 “차 값이 다소 비싼데다, 최근 기름값이 많이 떨어지고 있어 구입 여부를 망설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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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컨대 하이브리드 차량의 선두 주자인 도요타의 캠리를 보자. 가솔린엔진을 장착한 2500㏄ 캠리의 가격은 3390만원이다. 연비는 리터당 11.5㎞. 캠리 하이브리드는 4300만원으로 910만원(26%) 비싸다. 연비는 16.4㎞로 높다. 기름을 1리터 넣으면 가솔린엔진보다 5㎞를 더 갈 수 있다. 하지만 유가 하락세가 뚜렷해질수록 하이브리드의 장점은 퇴색된다.

 하이브리드 차량에 대한 소비자의 다른 고민은 배터리다. 공인회계사 이모(43)씨는 연비는 물론 배터리 수명이 반영구적이라 튼튼할 것 같다는 생각에 구입을 결심했다. 그러나 이씨는 “고장이 한 번 나면 수리비가 수 백만원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흔들린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이브리드를 놓고 목하 고민 중인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자동차 업체들이 연초부터 시장 공략의 고삐를 죄고 있다. 포문은 도요타가 열었다. 도요타는 새해부터 배터리의 무상 보증을 기존의 ‘5년간, 8만㎞’에서 ‘10년, 20만㎞’로 두 배 가량 확대한다고 5일 밝혔다. 기름값에 흔들리고, 수리비 걱정을 하는 고객들을 ‘파격 보증’으로 잡겠다는 포석이다. 대상 차량은 렉서스의 하이브리드 모든 차종과 프리우스 등이다. 해치백 모델인 렉서스 CT 200h와 ES 300h, 최근 출시된 NX 300h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혜택은 한국에서만 실시하는 것이라 더욱 주목된다. 도요타가 새해 벽두부터 기선제압에 나선 건 하이브리드 차가 그만큼 효자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팔린 렉서스는 약 6400대였다. 특히 ES 300h를 필두로 하이브리드가 5100대(80%)나 팔렸다.

 한국토요타 요시다 아키히사 사장은 “뛰어난 연비 뿐 아니라 대기오염 물질인 질소화합물(NOx) 배출 등이 압도적으로 적은 것이 렉서스 하이브리드 모델”이라며 “올해도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하이브리드 차의 배터리가 잘 터진다는 루머가 돌았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도요타 김성환 차장은 “근거 없는 소문을 일축한다는 의미에서 보증 기간을 대폭 늘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캠리 하이브리드의 경우, 배터리 가격이 434만원에 달한다. 도요타 측에선 아직 사례가 없다고 하지만 혹시라도 고장 나면 주머니 부담이 만만찮다.

 국내에선 올 상반기에 현대차가 쏘나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모델을 출시해 공세를 강화할 참이다. 일반 하이브리드 차는 가솔린을 사용하고 운행할 때 동력으로 배터리를 충전한다. 전기자동차가 플러그를 꽂아서 아무 때나 편하게 충전할 수 있는 것과 다르다. 플러그인은 가솔린과 전기를 결합해 하이브리드의 이같은 약점을 보완한 기술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친환경차 개발 로드맵에 따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모델 확대로 시장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쏘나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는 오는 12일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될 예정이다.

 현대차는 앞서 지난달 16일 출시한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선전에 고무돼 있다. 지난 2일까지 1400여 대가 계약됐다. 올해 국내에서 1만8000대를 팔 계획이다. 현대차는 가솔린 직분사 엔진을 얹어 “주행 성능이 좋은 하이브리드’라는 인식을 심어준 게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현대차는 올 상반기부터 미국을 필두로 주요 수출국에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선보일 계획이고, 해외에서만 총 3만7000대 판매를 목표로 잡았다. 보증 부분에선 도요타에 앞서 일찌감치 전용 부품에 대해 ‘10년, 20만㎞’ 무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업체들이 하이브리드 공세에 나서고 있는 건 잇단 ‘당근책’과도 무관치 않다. 올해부턴 1㎞를 달릴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97g 아래인 하이브리드 차량에겐 정부가 100만원 보조금을 준다. 현대차의 쏘나타, 도요타의 프리우스와 렉서스 CT200h, 포드의 퓨전 등이 해당된다. 또 하이브리드 차를 살 때 제공되는 취득·등록세 감면(최대 140만원) 혜택도 그대로 유지된다.

 다른 수입차 업체들이라고 도요타·현대차의 공세를 보고만 있을 리 없다. 아우디는 올 하반기에 A3 스포트백 e-트론을 내놓는다. 아우디 최초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술을 적용한 차다. 지난해 5월 부산 국제모터쇼에 공개됐는데 한 번 주유로 940㎞를 주행할 수 있어 주목 받았다. BMW도 올해 안으로 X5 e드라이브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차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술을 녹여낸 SUV 모델이다. 보통 가정용 전원이나 BMW 별도 장비를 통해 신속하게 충전할 수 있다.

 업체 입장에선 하이브리드 차량 생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도 있다. KB투자증권에 따르면 미국에선 1975년부터 연비 규제가 시작됐는데 올해부터 그 기준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예고돼 있다. 연비 좋은 하이브리드 기술이 없으면 최대 시장 미국에서 백전백패라는 얘기다.

 하지만 유가 흐름은 여전히 하이브리드의 복병이 될 수 있다. 지난해 8월부터 급락하기 시작한 국제유가는 현재 배럴당 50달러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노근환 연구원은 “최근의 유가 급락은 지난 10년간의 흐름과는 또 다른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본격적인 셰일가스 개발로 생산량이 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합의에 실패하는 등 공급 자체가 늘면서 기름값이 떨어지는데 이런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기름값과 맞물려 가솔린 차보다 비싼 가격도 장애물로 거론된다. 삼성증권 김승우 연구원은 “자동차 산업의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하이브리드 차량의 개발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다만 배터리 가격 등의 비용 문제로 수요 확대는 느리다”고 말했다.

김준술·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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