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민주화 없인 정권유지 힘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미국 국무부 로버트 졸릭 부장관이 중국에 대해 이례적으로 경고했다. 국무부 2인자이자 미.중 고위급 회담 대표인 졸릭은 21일 밤 뉴욕에서 열린 미.중 관계 전국위원회에 참석해 '중국은 어디로?'라는 제목으로 연설했다. 그는 "중국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국가"라며 정치.군사.외교.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을 촉구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22일 졸릭의 연설에 대해 "양국 관계의 전반을 아우르는 이례적인 경고"라고 평가했다.

◆ 분야별 요구 사항=졸릭은 민감한 정치 분야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는 "일당 독재는 위험하다. 민주화 없이 정권이 유지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런 사례로 ^농민운동의 흐름을 타고 집권한 정권이 빈발하는 폭력적인 농민봉기에 직면했고 ^방대한 경찰력으로도 범죄 확산을 막지 못하며 ^정부가 전국 단일 노조를 장악하고 있으나 현장 파업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졸릭은 구체적으로 성(省) 차원의 직접선거 실시를 촉구했다.

군사.외교 분야도 민감하다. 졸릭은 "중국은 최근 군사력 강화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군사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이 중국을 적대시하지 않는데 중국은 미국을 적대시한다"고 말했다. 졸릭은 외교 분야에서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행동으로 미국과 세계 각국의 우려를 씻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핵 확산과 관련, "북한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합의를 이행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이란의 핵 개발을 지원해선 안 된다"고 요구했다.

경제 분야는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에 초점이 맞춰졌다. 졸릭은 "중국이 지금까지 자국의 성장에만 주력해 왔다.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 1620억 달러(약 162조원.2004년)는 받아들이기 힘든 액수다. 중국은 이를 당연시할 것이 아니라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의 투명성을 높이고, 지적재산권 보호를 철저히 하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축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 발언 배경=졸릭은 연설 앞머리에서 "중국이 70년대 말 국제사회에 등장한 이후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중국은 국제사회의 평범한 일원이 아니라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할 영향력 있는 국가가 됐다"고 치켜세웠다. 중국이 영향력 있는 국가로 성장했기에 그 성공을 가능케 해준 국제사회에 보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졸릭은 "국제사회에선 어느 나라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만약 미.중이 적대시한다면 국제사회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질문했다.

졸릭의 이런 입장은 지난주 유엔 총회 기간 중 이뤄진 미.중 정상회담과 8월 미.중 고위급 회담을 통해 중국 측에 전달된 내용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6자회담에서 (미국이 볼 때) 북한의 입장을 상당히 배려했다고 본다. 이란 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려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중국은 또 석유 확보를 위해 미국에 적대적인 베네수엘라.수단.짐바브웨.미얀마 등과 관계를 강화해 왔다. 9.11테러 이후 반테러 전쟁 과정에서 협력을 구하기 위해 대중 온건 자세로 일관해온 미국이 이제 보다 더 원칙적인 자세를 보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