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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세계사 바꾼 위대한 리더 … 세계 3대 제독 자격 충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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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호 11면

이순신 장군이 명실상부하게 세계사적 인물로 자리매김하려면 세계 각국의 세계사 교과서에 자주 노출돼야 한다. 세계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이순신 장군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마크 길버트(Marc Gilbert·사진) 하와이퍼시픽대 역사학과 석좌교수를 인터뷰했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박사인 그는 현재 7판까지 발행된 미국 대학 교과서 『세계문명(World Civilizations)』의 공동저자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미국 역사학자가 평가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세계사를 바꿨는가.
 “중국의 명-청 교체는 매우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에 패한 일본은 250년간 쇄국의 길로 들어선다. 일본은 이순신 장군의 전략을 활용해 러일전쟁(1904~1905)에서 승리한다.”

 -어떤 인물이었다고 보나.
 “군사 분야의 천재였을 뿐만 아니라 백성을 사랑한 매우 인도주의적인 사람이었다. 충효(忠孝)를 헌신적으로 실천한 인물이다. 애국·애민을 말하는 정치인은 많다. 이순신 제독은 언행이 일치했다.”

 -역사 속 다른 군사 지도자들 중에서도 매우 특이한 사례인가.
 “그렇다. 그는 군사적 자질과 인간적 덕성을 한몸에 구비했다. 시적인 문장으로 편지를 쓴 문인이기도 했다.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성품이 매우 강했다. 의사소통과 협상을 중시하면서도 의사결정 시 강요당하는 것은 거부하는 기질도 지녔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사람을 알아보는 눈도 뛰어났다. 뛰어난 인물인 만큼 사람들도 그의 위대함을 알아봤다. 사람은 누구나 위대한 것을 보면 위대하다고 느낀다. 또 겸허했기에 승리의 공로는 남에게 돌렸다. 일본인들도 그를 존경해왔다.”

 -그를 서구에 알린 것은 일본인들이다. 일본인들은 왜 그에게 매료됐을까.
 “일본 해군 지도자들은 이순신 제독의 전략을 빌려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이순신 제독이 온전히 구현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직은 이순신이 외국 역사 교과서에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전쟁사 전공 사학자들을 제외하면 이순신 장군에 대해 다루는 서구 역사학자가 많지 않다. 한국사와 동남아시아사는 세계사 교과서에서 비중이 낮은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중국·인도에 대해 다루다 보면 지면이 많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을 세계 5대 제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 물론 나는 역사학자로서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역사적 맥락이 항상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세계 3대 제독으로 꼽겠다.”

 -한류의 아이콘이 될 수도 있을까.
 “그렇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은 모든 여행안내 책자에 나와 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사실 한국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방문 후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만은 누구나 기억한다. 또한 그는 한국의 제조업 전통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국은 현대뿐만 아니라 고대부터 찬란한 제조업을 자랑한다. 이순신 제독도 한국 제조업 전통의 중심에 서 있다. 그가 거북선을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필요에 맞게 개량했으며, 조선소를 만들어 순식간에 거북선을 비롯한 전함을 건조했다.”

 -마지막으로 강조할 게 있다면.
 “그는 완벽한 인간이었으며 세계적인 지도자이자 영웅이었다.”

김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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